식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025
한자 食生活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일대에서 먹는 음식과 먹는 일에 관한 생활 문화.

[개설]

보령시는 산악, 평지, 해안, 도서 등의 다양한 자연 조건을 갖춘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물류의 이동이 자유롭기 이전까지는 자연 지리적인 조건에 따른 지역 토산물은 주민들의 식생활 문화에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보령 지역 주민의 식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 문헌은 없으며,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현재 주민의 식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는 없다. 현대화되어 지리적 구분 없이 식생활 문화가 공유되기 전인 1~2세대 이전에 즐기던 먹거리와 그와 관련한 식생활 관행을 본다면 다양한 지리적 여건을 갖춘 보령시 주민의 식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징]

주식과 부식을 기본으로 하는 기본적인 식문화 양상은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다. 다만 도서와 해안 지역은 해산물의 비중이 높고, 다양하다는 점이 지금까지도 큰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내륙 지역 주민들의 삶은 일반 타 도시 주민의 식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산나물을 활용한 나물 반찬과 장시에서 구입하는 어물, 젓갈 등이 중요한 부식거리였다. 특히 논의 김매기철이 되면 어물 수요가 보다 높아졌다. 고된 노동을 하는 농군들에게 특별한 반찬으로 호박나물을 제공했는데, 호박나물은 새우젓을 넣어 볶았다. 김장철에는 황석어젓갈을 많이 사용했으나 근래에는 멸치젓과 까나리젓을 주로 사용한다.

도서와 해안 지역 주민들은 소소하게 잡히는 어물을 얼간을 하거나 말렸다가 부식으로 활용했고, 장시를 통해 이것을 유통시켰다. 보령화력발전소 건립, 해양 오염, 어족자원 감소로 어물 섭취가 과거처럼 자유롭지만은 않다. 어족 자원이 풍부하던 시절에는 초봄에 황복이 들면 복쟁이를 말려 두었다가 가을에 국을 끓여 먹었고, 주목망에 든 조기와 갈치는 소금 간을 약하게 해서 구워 먹었으며, 숭어는 포를 떠서 말린 후 제물로 사용하였다. 홀치기 낚시로 잡은 꽁치는 건조대에 널어 과메기와 같이 말린 후 안주로 먹었다. 낙지는 낙지탕으로 즐겼고. 우럭은 소금을 물에 타서 생물 우럭을 담가 얼간을 해서 포를 떠서 말렸다. 얼간한 우럭은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어 매운탕으로 먹었다.

도서나 해안 지역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바지락은 반찬이 귀한 가정에서 좋은 식재료로 활용했고, 내륙 주민들은 바지락을 염장한 조개젓을 즐겼다. 갯벌이 발달한 주교면에서는 바지락을 채취해 조개젓갈을 만들었다. 지금도 장고도, 고대도 등지에서는 까나리와 멸치, 잡어를 섞어 만든 잡젓을 주로 만들어 먹고 있다. 특히 보령 바지락은 크기가 크고 맛이 좋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해감 후 된장국이나 미역국, 심지어는 떡국을 끓이는 데도 넣었다. 살만 바른 바지락을 된장을 조금 넣고 끓여 여름철 상추 등의 쌈채소에 곁들였다. 가을철에는 붕어지[붕장어] 구이, 바카지 게장 등을 담아 먹었다.

보령화력발전소 건립 이전까지 해안에는 듬복, 참말, 고시락 등의 해조류가 많았다. 듬북은 봄에 뜯어서 말려 두었다가 무쳐 먹었으나 지금은 없다. 겨울철에 갯벌에 널린 참망을 뜯어다가 데쳐서 무침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역시 해안가 주민들은 4~5월에 고시락을 뜯어서 말려 두었다가 수시로 묵을 쑤어 먹었다. 어물뿐만이 아니라 해조류는 식자재가 부족한 해안 및 도서지역 주민들에게 훌륭한 부식거리였다.

냉동 시설이 완비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물은 생물보다는 염장하거나 건어로 섭취하였다. 특히 섬 주민이 말려서 광천장, 대천장으로 내온 어물은 내륙에서는 귀한 반찬이 되었다. 현재 널리 알려진 멸치젓과 까나리젓 이외에 밴댕이젓, 꼴뚝젓, 오징어젓, 열치젓, 각종 어물로 만든 젓갈은 보령 주민들에게 주요한 부식거리였다.

어느 지역이나 식량 자원 활용이 자유로워지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는 춘궁기를 겪었다. 내륙도 어려웠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섬 주민의 춘궁기는 더 고통스러웠다. 외연도, 녹도 등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은 농토가 부족하고 자급자족 물량이 적어 칡뿌리, 개나리밥, 각종 나물들로 배를 채웠다. 지금은 옛일이 된 보리송편, 파래떡, 말을 넣은 밥 등은 보령 도서 및 해안 지역민의 구황기의 주요한 식재료였다.

[참고문헌]
  • 김효경, 「민속」(『2019년 충청남도 섬과 항포구 조사 1차』, 충청남도역사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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