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44
한자 寺浦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사포현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웅천읍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지역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개설]

백제 시대 설림군[서천]에 편제된 행정 구역의 하나로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웅천읍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웅천읍 수부리 수안마을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남포로 개칭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사비천도(泗沘遷都)를 전후한 시기에 성왕(聖王)[재위: 523~554]이 기존의 거점성 중심의 지방 통치 조직인 담로제(檐魯制)에서 전국을 일원적으로 편제한 방-군-성[현] 체제로 정비하였다. 전국을 5방으로 나누고, 방 아래에 37군, 군 아래에 200여 개의 성[현]을 두었다. 이는 지방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여 조세 수취(收聚)와 노동력 동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6, 지리3 웅주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림군(西林郡)은 본래 백제 설림군(舌林郡)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영현이 둘이다. 남포현(藍浦縣)은 본래 백제 사포현(寺浦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비인현(庇仁縣)은 본래 백제 비중현(比衆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 『삼국사기』 권36, 지리4 도독부 13현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곤현(散昆縣)은 본래 신촌(新村)이다. …매라현(邁羅縣),”

○ 『삼국사기』 권28, 의자왕 15년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름 5월에 붉은 말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로 들어가 울면서 법당을 돌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

[내용]

백제 시대 보령 지역은 설림군[서천]과 결기군[결성]의 영현(領縣)으로 편제되었는데, 사포현은 설림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였다. 백제는 사비기(泗沘期)에 지방 통치 체제로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시행하였는데, 성(城)이 현(縣)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현]은 지방 지배의 거점으로 독자적인 지배 영역을 가지며, 방이나 군에 영속되어 있었다. 성[현]에는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성주(城主) 또는 도사(道使)라고 불렸다. 백제에는 200개의 성[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포현의 중심에서 동북쪽에는 성주사의 전신인 오함사(烏含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이 사찰은 법왕(法王)[재위 599~600]이 왕자 시절에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창건하였다. 백제 말기인 655년(의자왕 15)에는 붉은 말이 오함사에 들어가 울면서 법당을 돌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고 하여 백제의 멸망을 예고하는 이변 현상이 일어났다.

[변천]

나당군이 백제를 멸한 후 663년에 백제 고지를 1도독부(都督府) 7주 51현으로 편제하였는데, 이때 보령 지역은 도독부의 직할 영역으로 산곤현(散昆縣)과 매라현(邁羅縣)이 두어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사포현 지역은 매라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 대 남포현(藍浦縣)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에서도 그대로 시용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