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865
한자 保寧 禪林寺 木造釋迦如來坐像
이칭/별칭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 좌상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521-64[소성리 산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성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1년 7월 20일연표보기 -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현 소장처 선림사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521-64[소성리 산5]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나무
크기(높이) 49.4㎝[높이]
소유자 선림사
관리자 선림사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6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선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개설]

선림사(禪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사찰의 전언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없다. 조선 철종 때 박행원(朴行遠)이 사찰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선림사에 조선 후기 목조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점을 보면 조선 철종 시기에 선림사가 중수되었을 가능성은 높다. 사찰의 주 법당인 대웅전에는 조선 후기 제작된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保寧 禪林寺 木造釋迦如來坐像)보령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保寧 禪林寺木造觀音菩薩坐像)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의 높이는 49.4㎝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높이는 59㎝이다.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

머리에는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불분명하게 표현되었으며, 나발(螺髮)[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이 비교적 크게 조각되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통형으로 솟은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으며, 정상계주 앞에는 중앙계주(中央髻珠)가 함께 조각되었다.

불상의 얼굴은 이마가 비교적 넓으며 턱과 볼이 두텁게 조각되어 있다. 눈·코·입은 얼굴 중심부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느낌이다. 불상은 대의(大衣)가 왼쪽 어깨를 모두 덮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에는 대의 자락이 살짝 걸쳐 있는데, 이러한 착의 방법은 변형 편단우견식(偏袒右肩式)으로 불린다. 가슴에는 내의(內衣)가 수평으로 가슴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다. 내의를 묶는 끈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중지와 약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닿게 한 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오른손은 다리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다.

[특징]

조선 후기 전형적인 석가여래좌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신체에 비해 머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으며 무릎과 어깨가 넓어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모습은 1606년(선조 39)에 조성된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公州 東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1612년(광해군 4)에 조성된 함양상연대목조관음보살좌상(咸陽 上蓮臺 木造觀音菩薩坐像), 1614년(광해군 6)에 조성된 숭림사보광전목조석가여래좌상(崇林寺普光殿木造釋迦如來坐像) 등 17세기 전반의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기년명(紀年銘) 불상과 유사한 모습이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주요 불상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1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파괴된 불상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복장(腹藏) 발원문이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 시기와 작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상 양식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 상태가 좋고 불상의 세부 표현이 잘 드러나 있으며, 시대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불상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 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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