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94
한자 基督敎-傳播-保寧-役割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현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의의.

[개설]

기독교는 영어로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세계 인구 약 70억 명 중 모든 교파를 합쳐 24억 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로마 후기에 그리스정교회와 로마카톨릭으로 나뉘어졌고, 16세기에 로마카톨릭에서 성공회와 개신교가 분리되었지만, 기독교계 모든 종파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17세기 청나라로 간 사신들에 의해 카톨릭을 접하면서 『천주실의(天主實義)』 등의 천주교 관련 서적이 수입되었고, 1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천주교는 4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양반 관료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유교적인 윤리규범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져 19세기 말까지 천주교 신자와 천주교를 전파한 서양 성직자들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개항 이후 서양 열강들과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천주교 전파와 더불어 개신교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보령과 천주교의 만남]

보령 지역은 충청도 내포 지역과 더불어 18세기 후반부터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여 많은 수의 신자가 생긴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른 박해도 많이 받았다.

1791년(정조 15)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전 승지 이수하(李秀夏)[1725~?]가 사는 곳은 보령현으로 사학[천주교]이 융성하여 현감 김일운(金日雲)[1759~?]이 신자 10여 명을 징계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전해지며, 1794년(정조 18)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1752~1801]가 입국하여 충청도 연산, 남포, 내포 지역을 드나들었다고 전해진다.

보령 지역에서 천주교와 관련 있는 장소로는 오천면 충청수영성에서 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이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선교사인 안토니오 다블뤼(Daveluy Marie Antonie Nicolas)[1818~1866] 주교, 루카 위앵(Martin Luc Huin)[1836~1866] 신부, 베드로 오메르트(Aumaitre Pierre)[1837~1866] 신부 3명과 장주기(張周基)[1803~1866], 황석두(黃錫斗)[1815~1866] 등 조선인 천주교 신자 2명이 순교당한 곳이다. 이들의 처형은 충청수군절도사 주관하에 1866년 3월 30일에 집행되었는데, 황석두는 홍산에서 장사를 지냈다가 명동성당으로 시신이 옮겨졌으며, 나머지 4명의 시신은 남포 서지골에 매장하였다가 1882년 일본 나가시키로 옮겨졌고, 그 후 1894년 명동성당으로 이전하여 현재는 모두 서울 절두산에 모시고 있다.

[보령과 개신교의 만남]

우리나라의 개신교 선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에서 개신교 선교에 자유를 요구하고 합의하게 되면서 포교 초창기에 박해에 시달렸던 천주교와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신교 선교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보령 지역의 개신교 전파는 이미 19세기 초반 서양 열강들의 선박인 이양선들이 서천 마량진과 고대도를 통하여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위치한 마량진은 당시 충청수영의 속한 수군 진영으로 1816년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다가 도착하게 되었다. 이때 마량진첨사(馬梁鎭僉使)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庇仁縣監) 이승렬(李升烈)[?~?]이 차례로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문정(問情)[외국 배가 처음으로 항구에 들어왔을 때 관리를 보내어 그 사정을 알아보던 일]하였고, 선실 서가에 가득한 서적과 천구의 등에 호기심을 보여 알세스트호 함장 머레이 맥스웰(Murray Maxwell)[1775~1831]이 책을 주었는데 그 책이 성경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으로 마량진은 한국 최초의 성경이 전래된 곳이 되었다.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마량진을 다녀간 지 16년 후인 1832년 7월 동인도회사의 용선 로드 앰허스트(Lord Amhest)가 중국 연안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목적으로 항해하던 중 황해도 몽금포를 거쳐 충청도 홍주목에 속했던 고대도에 정박하였다. 이때 로드 앰허스트에 승선했던 의사 겸 통역을 맡은 프로이센 출신의 유대계 폴란드인 장로교 목사 칼 프레드릭 어거스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1803~1851]가 고대도에 들어와 약 한 달 간 머무르게 되면서 포도 재배법, 포도주 제조법, 감자 재배 방법을 전파하였고, 조선 국왕에게 헌상할 서신과 한문 성경 등을 주었다. 또한 귀츨라프는 당시 홍주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1766~?]에게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령 백성들에게 알려주도록 하였는데, 한문 성경과 주기도문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통해 기독교가 보령 지역에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령과 기독교의 현재]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는 천주교와 관련하여 성당 4곳, 공소 3곳이 있다. 먼저 보령 지역 최대 성당인 대천천주교회는 장항성당의 공소로 시작되어 1962년 10월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충청남도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1821~1846 당진 출신] 신부와 최양업(崔良業)[1821~1861, 청양 출신] 신부가 배출되면서 당진 지역이 국내 최초 천주교 채택지가 되었지만, 보령 지역의 경우 가장 늦은 1960년대에 와서야 성당이 설립되었다. 1988년 웅천공소[현 웅천성당], 1994년 은포리공소, 1999년 해수욕장 성당[요나성당], 2002년 대천동 제2성당[현 보령 동대동 성당], 2003년 갈매못 성당 등으로 확장되었다.

개신교의 경우 1908년 감리교가 처음으로 들어와 대천제일교회가 세워졌는데, 보령 최초의 유치원인 교회 부설 대천유치원을 같이 설립하였다. 현재 대천중앙감리교회가 감리교 교회 중 가장 큰 교회이며, 보령 지역에는 총 33개의 감리교회가 있다. 장로교의 경우 보령 내 111개의 교회가 있어 보령 지역 개신교 중 가장 많은 교회와 신자가 있는데, ‘의료봉사, 독거노인 가정방문,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전달’ 등 지역사회의 화합과 문화발전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보령 내 기독교 전파의 의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은 성경의 첫 전래, 전파 그리고 박해 등 기독교의 가장 찬란하고 어두운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개신교의 경우 근대 이후로 일찍이 정착하여 지역민들의 삶에 스며들어 현재까지 지역사회와 문화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천주교의 경우 보령 지역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성당이 들어와 천주교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늦게 전파되었다. 그러나 충청남도 지역에 천주교 박해 성지가 재정비가 되고 주목을 받게 되면서 보령 지역의 천주교 박해와 관련한 갈매못 성지를 시작으로 서짓골 성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두 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정착되어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고, 지역문화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요나성당으로 불리는 해수욕장 성당의 경우,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방문객을 위한 숙박시설도 운영하고 있어 천주교 문화가 보령 관광문화에 접목하여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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