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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사 왜관분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245
한자 衡平社倭館分社
영어의미역 Waegwan Social Equality Societ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
설립연도/일시 1923년 9월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미상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왜관 지역에 있었던 조선형평사 소속 분회.

[개설]

형평사 왜관분사는 백정들의 신분상승 운동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이다. 칠곡 지역에는 1929년 6월의 통계에 의하면 백정이 38호에 227명이었다. 백정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되고 냉대되었으므로 이의 해소를 위하여 왜관분사를 설치하고 권익의 옹호를 도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왜관분사가 정확히 언제 창립되었는지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고 단지 1925년 9월 13일에 왜관청년회관에서 창립 2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는 신문 기사로 보아 1923년 9월경에 창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립 당시의 조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창립 축하식 준비를 위해 30여명의 왜관분사 회원 중 김삼용(金三用)·이명준(李命俊)이 준비위원으로 선임되고 있어 창립 당시 왜관분사 역시 이 정도의 회원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설립목적]

형평사 왜관분사는 민족의식 고취와 자유·평등·권익의 쟁취를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왜관분사 창립 이후 지역 주민들의 여러 반발이 있었으나 1928년 8월 2일에 왜관분사 임원회는 왜관분사 사무실에서 임시 간사회를 열고 사망한 전분사장 김삼용의 후임으로 사장 이명준, 서기 김특용(金特用)을 선임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하였다. 첫째, 형평사 약목준사의 분립에 관한 건, 둘째, 사무소 이전에 대한 건, 셋째, 분사제 폐지에 관한 건, 넷째, 유지 방침에 대한 건 등이다. 이후 형평사 왜관분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요사업과 업무]

왜관분사의 사업과 업무에 대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진주 형평사의 경우 계급의 타파, 백정에 대한 모욕적 칭호의 폐지, 교육의 장려, 백정에 대한 인간다운 대우 등을 당면한 목적으로 하면서도 민족해방운동의 대중적 기반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형평사 왜관분사의 경우도 형평사의 하부 조직으로 설립·운영되었으므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평사 왜관분사가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어떠한 조직을 가지고 업무를 분담하고 있었는지는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알 수 없다. 다만 1928년 8월 2일 왜관분사 임원회에서 분사장 김삼용의 사망으로 인한 임원 선임을 위한 임시 간사회가 열리고 있는데 후임 분사장 이명준, 서기 김특용(金特用)을 선임하고 있고, 한편 형평사 대구 지사의 경우 지사장, 부지사장, 총무, 재무, 평의원장과 평의원 10여명을 선임하고 있어 왜관분사에서도 분사장, 서기를 비롯한 약간의 임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분사 활동을 주도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형평사는 일제 강점기에 백정들의 신분상승 운동과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운동단체로서 사상·청년·여성 운동 등 많은 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차별 철폐 등을 위해 활동하면서도 민족해방 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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