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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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思默 |
영어음역 | Gim Samu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성섭 |
성격 | 행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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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
성별 | 남 |
생년 | 1856년 |
몰년 | 1921년 |
본관 | 안동 |
대표경력 | 경기도관찰사|조선교육회의 부회장 |
[정의]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행정가.
[활동사항]
김사묵은 1856년 4월 9일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서 출생하였다. 1885년(고종 2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일본유람신사 단원으로 활약하였다. 1897년 중추원 참서관을 지냈고, 1902년 평리원 수반검사,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1903년 경무청 경무국장을 지냈고, 1905년 3월 경무청 경찰국장을 지냈다. 1907년 경무사로 부임하고, 같은 해 중추원 찬의를 거쳐 경상남도 관찰사를 지냈다. 1908년(순종 1) 경기도 관찰사로 제수되었으며, 191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의원면직되었다.
1903년 7월 경무국장으로 있을 때, 내장원의 고미(庫米)가 시전상인을 거쳐 간상(奸商)에게 싸게 팔려나가 은닉되어 모리(牟利)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가 항간에 떠돌았다. 김사묵은 경찰의 직책을 담당한 자로서 부지런히 검찰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죄를 청하는 자핵소을 올려 견책과 함께 2개월 감봉처분을 받았다.
1910년 6월 7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공문을 일문으로 시행하는 것을 내각령으로 금지하였는데도, 최근의 각 관찰사들의 공문을 보면 경기관찰사 김사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문으로 시행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20년 6월 한규설, 이상재, 유근 등의 발기로 민족교육의 장려 진흥을 내걸고 출범한 교육운동단체인 조선교육회의 부회장에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34년 잡지 『삼천리』의 「13도 관찰사의 기후(其后)」라는 글에서 “김사묵은 두 번의 경무사 경력을 가진 경찰의 선배로 경상남도와 경기도 2도의 관찰사가 되었는데 강직 고결했던 인격자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의 선산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