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손계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52
한자 與孫季進
영어공식명칭 A Letter To Son Gyejin
이칭/별칭 「손계진에게 주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3년 - 「여손계진」 저자 정구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19년연표보기 - 「여손계진」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20년 - 「여손계진」 저자 정구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80년 - 『한강집』 간행
배경 지역 사수동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지도보기
배경 지역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로 1[도동리 35]지도보기
성격 서간류|서
작가 정구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손린에게 보낸 편지.

[개설]

「여손계진(與孫季進)」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서(禮書)를 편찬하였다. 정구는 말년에 칠곡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일대]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대구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유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도동서원(道東書院) 등 많은 서원에 제향되었다.

손린(孫遴)[1566~1628]의 본관은 일직(一直)이고, 자는 계진(季進), 호는 문탄(聞灘)이다. 정구의 문인이다. 대구광역시의 봉암사(鳳巖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문탄집(聞灘集)』이 있다. 당시 경주제독(慶州提督)으로 있었다.

『국역 한강집』에 수록된 「여손계진」의 이칭은 「손계진에게 주다」이다.

[구성]

「여손계진」은 경주부윤(慶州府尹) 윤효전(尹孝全)[1563~1619]의 상사(喪事)를 맡아서 처리하여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여손계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윤 영감은 일을 처리할 만한 자제가 없어 상사(喪事)를 도맡아 처리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자네가 주도적으로 상사를 담당하여야 할 듯하네. 같은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하였고 의리가 중하고 죽은 이를 가련히 여기는 일이니 정성을 다하여 상사를 보살펴 유감이 없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인편을 통하여서 문상은 하지만 부의를 전할 곳이 아직 없어 호상소(護喪所)로 글 한 통을 지어 보내네. 말로써 어찌 그 마음을 다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이곳으로 돌아와 향교를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 있었으니, 혹시 경주부윤의 상사를 마무지 짓지 못할까 걱정된다네.”

[특징]

「여손계진」손린에게 윤효전의 상사를 도맡아 처리하여야 할 당위성을 간곡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손계진」정구가 죽기 1년 전에 쓴 글이며, 자신의 심각한 병세에도 문인의 상사에 대처하는 스승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안타까운 감정보다 상사를 잘 치러 죽은 자에게 유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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