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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12
한자 玄風 布敎堂 三層石塔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동로27길 54-6[부리 382]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복원 시기/일시 2013년 9월 -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 복원
현 소재지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현풍동로 27길 54-6[부리 382]
원소재지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비슬로134길 167-6[상리 539-1]
성격 석탑
양식 삼층석탑
재질 석재
소유자 현풍 포교당
관리자 현풍 포교당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 현풍 포교당에 있는 통일 신라 말의 석탑.

[개설]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玄風布敎堂三層石塔)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 382번지[현풍동로 27길 54-6] 현풍 포교당에 있는 통일 신라 말의 석탑이다. 현풍 포교당은 1908년 해인사 승려 변설호(卞雪湖)가 유가사(瑜伽寺)와 도성암(道成庵)을 왕래하면서 중계지로 포교당을 설립한 것이 창건의 시작이었다. 6·25 전쟁 때도 소실되지 않은 현풍읍의 유일한 사찰이며, 1958년 7월 15일 승려 김해운(金海雲)이 대웅전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본래 유가사의 현풍 지역 포교당으로 시작되었지만 독립 사찰로 분리되면서, 동화사(桐華寺)의 포교당이 되었다. 그러나 토지는 현재까지 유가사의 소유로 되어 있어 재정적으로는 유가사에 소속되어 있다. 2001년 법당의 노후로 인해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2011년에는 공양간을 신축하였다.

[건립 경위]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의 부재나 구조로 보아 통일 신라 말에 조성한 탑으로 추정된다.

[형태]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은 쌍탑으로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왼쪽 탑은 옥개석(屋蓋石) 세 개와 상층 기단 면석(基壇面石) 한 개가 본래의 탑재이고, 오른쪽 탑은 옥개석 세 개와 상층 기단 갑석(基壇甲石) 한 개만 본래의 탑재이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어 삽입한 것으로, 모양이나 구조는 모두 같다. 하층 기단 면석과 지대석(地臺石)은 하나의 부재이며, 갑석은 세 개의 부재로, 상부에는 2단의 탑신 괴임을 두었다. 상층 기단 면석은 감입식으로 양쪽에 우주(隅柱)와 한 개의 탱주(撑柱)가 모각되어 있다. 상층 기단 갑석은 두 개의 부재로 부연(副椽)을 표현하였고, 상부에는 2단의 탑신 괴임을 두었다. 탑신에는 양쪽에 주를 새겼고, 상부에 2단의 탑신 괴임을 두었다. 옥개석의 물매가 깊지 않고, 1층·2층·3층 옥개석 받침은 모두 4단이며, 추녀의 반전은 부드럽다. 상륜부는 온전히 새롭게 조각하여 올렸다.

[현황]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은 쌍탑으로 대구 현풍 초등학교에 흩어져 있던 석탑 부재들을 2011년 11월에 기증받아, 주지인 심담이 2년간의 노력 끝에 2013년 9월에 복원하였다. 대구 현풍 초등학교 근처에는 옛날에 홍문사(紅門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폐사되면서 석탑의 부재들이 지금의 대구 현풍 초등학교로 흘러들어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또 현풍 포교당에는 1673년(현종 14) 사찰 중건 당시 시주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공덕비가 남아 있다. 따라서 현풍 포교당 삼층석탑은 과거 홍문사의 탑으로, 사찰이 폐사되면서 방치되다가 일부는 현풍 향교의 석재로 사용되었고, 일부는 대구 현풍 초등학교에 있다가 현풍 포교당으로 옮겨 부분적인 보완 작업을 거쳐 새롭게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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