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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대구에서 「국가보안법」 제3차 개정안에 반대하며 벌인 민주주의 운동. 이승만 정권 말기 여당인 자유당은 1958년 8월 11일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였다. 야당은 강력히 반대하며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자 자유당은 1958년 12월 24일 300명의 무장 경관을 동원하여 저항하는 야당 의원들을 국회에서 폭력으로 몰아내고 대공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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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4월 대구 지역 4개 대학교 학생들이 벌인 학원 민주화운동.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학원을 정치적으로 장악할 목적으로 1960년 해체되었던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경북대학교·영남대학교·계명대학교·대구대학교 등 대구 지역 4개 대학교 300여 명의 학생들은 학내 민주화 및 자율화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1985년 4월 10일 4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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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통일운동가. 강신용(姜信用)[?~?]은 광복 후 언론인으로 종사하면서 평화와 자주의 민족 통일에 공감하여 경북민족통일연맹에 가입하여 교섭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3·1 민족통일촉진궐기대회’를 개최하여 가두시위를 전개하고, 2대 악법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4·19혁명 시기에 언론 활동과 민족·민주운동을 전개한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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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대구에서 결성된 진보적 청년운동 단체. 민주민족청년동맹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12일 부산에서 설립된 진보적 청년운동 단체이다.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이종률의 지도 아래 결성된 민주민족청년동맹은 자주적 통일과 진보적 민주 체제를 지향하는 청년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민주민족청년동맹의 지역 조직인 경북 민주민족청년동맹은 1961년 1월 7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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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결성한 통일운동 단체. 경북시국대책위원회(慶北時局對策委員會)[이칭 시국대책위원회·경상북도 시국대책위원회]는 4·19혁명 시기 통일운동을 목적으로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경근은 일제강점기 김구를 보좌하면서 밀정 숙청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고, 안민생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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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 지역에서 국민 보도 연맹 사건과 한국 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4·19 혁명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6·25 전쟁 전후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등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긴급한 주요 사업으로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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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이후 6월 대구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후 양민 학살 사건의 대구 및 경상북도 희생자 유가족들이 결성한 단체.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정부 혹은 미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학살자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 목적은 결성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에 잘 드러난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들은 좌익분자라는 이름으로 처형된 자의 유족이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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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를 위하여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계명대학교 학원민주화실천회위원회(啓明大學校 學院民主化實踐會委圓會)는 10·26사태 이후 계명대학교 학생들이 학원 결성한 단체이다.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자율적 학생회를 구성하려는 학원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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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진행된 3선개헌 반대 투쟁. 박정희 정권은 1969년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3선개헌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야당 정치인, 재야 세력, 대학생 등은 3선개헌 저지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대구에서도 각 대학을 중심으로 3선개헌 저지 운동이 전개되었다. 계명대학교·경북대학교·영남대학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3선개헌 저지 운동이 진행되었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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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 10일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계명대학교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연극 공연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계명대연극사건은 1979년 5월 10일 ‘계명대학교 비사축제’ 기간에 기독학생회를 중심으로 연극반 학생들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근삼 작품의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는 연극 공연을 하던 중, 내용이 사전검열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연 중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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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대구에서 학생들이 교원노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하여 벌인 사회운동. 1960년 5월 7일 대구에서 대구초등교원노동조합과 대구중등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이어 5월 30일 경북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대구지구 및 경북지구 교원노동조합연합회는 교원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에 집중하였다. 투쟁에는 교원의 지위 향상, 교원의 사회보장제도 확립, 교원의 신분 보장 등의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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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대구에서 「국가보안법」 제3차 개정안에 반대하며 벌인 민주화운동. 대구의 국가보안법반대 가두시위(國家保安法反對街頭示威)는 1958년 12월 이승만 정권이 대공 사찰 강화와 언론통제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보안법」 3차 개정을 추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에서는 1958년 12월 2일 민주당 경북도당이 ‘국가보안법개악반대경북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국가보안법 반대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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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노동 상담과 노동자교육을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조직. 기독교대구노동자의 집은 1992년 대구 지역의 민중 교회 중 노동자 신도가 많았던 주민교회, 달구벌교회, 이웃교회가 중심이 되어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외곽단체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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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면서, 자주적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범시민운동단체의 성격을 가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협회의의 결성을 적극 지원하는 활동을 벌인 민족통일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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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있었던 남선물산 대구공장에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하여 농성한 노동운동. 남선물산은 1967년에 설립된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섬유 이외에도 13개 업종 9개 업체를 계열로 거느렸던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1984년에 부도가 난 후로는 법정관리 상태에 있었다. 당시 회사의 재정 상태는 부채 비율은 300%에 달하였으나 당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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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전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신동고개의 달성1구 광산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사건. 6·25전쟁 전후 달성군 가창면 신동고개[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달성1구 광산에서 우익 반공 단체와 국가권력에 의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달성1구 광산학살 사건(達城一區鑛山虐殺事件)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구성된 양민학살 국회특별조사반 경북반의 실지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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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 한국 전쟁 중 남한 지역에서 진행된 양민 학살은 국군 및 미군, 인민군 등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남한에 의한 양민 학살은 인민군이 점령하였던 지역, 빨치산 근거지 일대, 전쟁 직후 비점령 지역 등에서 최소한의 법적인 심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1949년 6월 5일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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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 현장에 대해 조사·발굴한 사건. 한국 전쟁 전후 달성군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은 사형 선고라는 법적인 근거 없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 따라 양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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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26일 대구에서 4·13호헌 철폐와 선택적 국민투표를 위하여 펼쳐진 국민평화대행진. 1987년 6월 24일에 전두환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대표의 영수 회담에서 김영삼 민주당 대표는 ‘4·13호헌 조치 철회’와 ‘선택적 국민투표 실시’를 제시하였으나 전두환 대통령이 ‘개헌 논의 재개’만 약속하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회담이 결렬된 것으로 간주하고 투쟁을 선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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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교육 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설립된 단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대구·경북 YMCA 중등교육자 협의회는 교육 민주화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대구·경북교사협의회로 조직 변환을 가졌다. 대구와 경북은 교사협의회를 각각 결성하였다. 당시 교사협의회는 전국 각지에서 결성되었고, 단위 학교에서는 평교사회가 잇따라 결성되었다. 대구교사협의회는 대구 지역 일선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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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노동 교육과 민주노조 지원 활동을 한 노동교육 단체. 대구노동교육협회는 대구 지역 노동자들의 의식화, 조직화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노동교육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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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대구에서 결성된 문화운동 단체. 대구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펼치며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자 1985년 결성된 우리문화연구회와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1989년 통합하여 ‘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약칭 민예련]을 결성하였다. 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은 이후 양 갈래로 분화되어 민중민주주의 운동 계열의 활동가들은 민중문화운동연합[약칭 민문연]을, 민족 해방 운동 계열은 대구노동자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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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있던 대구 지역 노동운동 그룹들의 통합 노동운동 단체. 대구노동자협의회[현대]는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경상북도지부 산하 ‘민주노조지원노동자공동위원회’와 대학 출신 노동운동 활동가 비공개 그룹이 통합하여 출범한 조직이다. 대구노동자협의회[현대]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이은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임금투쟁대책위원회’ 활동을 거치면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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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대구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결합한 사회운동을 도모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직. 대구노동자회 일벗은 대구 지역 금속연맹 소속 노동자인 상신브레이크 노동조합위원장 등의 노동운동가와 대학생 출신의 통일운동가들이 1994년 노동자가 주도하는 통일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직되었다. 일벗은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대표적인 통일운동인 ‘범민족대회’에 노동자 참여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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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본리동에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단체.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大邱外國人勞動者相談所)는 1990년대 초 외국인노동자 산업연수생제도가 실시된 후 대구와 구미 등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 일을 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의 법적 지위와 인권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 시작하자 제반 문제의 지원과 해결을 위하여 1996년 2월 16일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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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8일 대구 지역에서 민주 노조 건설 지원과 민주 노조 탄압 공동 대응을 위하여 결성된 연대 조직. 1987년 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각 지역에서 민주 노조 건설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구 지역에서도 오대금속, 태양어패럴 등이 연대 투쟁을 통하여 민주 노조를 건설하였고, 1988년 8월 15일 선진 노동자 조직인 대구노동자협의회가 창립되는 등 대구 지역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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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 대구에서 우리 노래 운동과 문화예술 운동을 위하여 결성된 복수의 문화단체. 1980년대와 1990년대 대구 지역 대학가와 문화계에 전통 민족문화 찾기와 민중문화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노래패들이 결성되어 문화예술 운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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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구에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지역 시민사회의 의제를 발굴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결성된 시민 단체. 대구참여연대(大邱參與連帶)는 배타성과 보수주의가 득세한 대구에서 군사정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을 목적으로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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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사납금 자율화 조치에 저항하며 사납금 인하와 부제 완화 투쟁을 벌인 대구 택시노동자의 총파업투쟁. 1980년대 노동자들의 상태는 매우 열악했다. 1980년에서 1990년에 걸쳐 노동생산성은 10.9% 증가하였으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7.1%에 그쳤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1987년 현재 주당 54.0시간으로 세계 최장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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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대구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를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 대구·경북노동자생존권확보투쟁위원회(大邱·慶北勞動者生存權確保鬪爭委員會)는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선진 지역이나 공장 소식을 노동자에게 전파하는 것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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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3일부터 9월 2일까지 대구광역시에 있는 대동공업에서 잰행된 노동 운동. 1992년 노태우 정부는 일정 규모가 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을 5% 이내로 억제하는 총액임금제 도입을 발표하였다. 총액임금제는 노태우 정권이 노동자 1년 총액임금을 기준 삼아 일정 비율 이하로 임금 인상률을 정하도록 강제한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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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사회과학서적 학습을 통한 사회문제 인식 공유를 위하여 결성한 조직. 두레회는 진보적인 서적 보급을 통하여 지역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구심점을 모색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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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혁명 시기 안경근, 안민생, 김성달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 민족통일연맹(民族統一聯盟)은 4·19혁명 시기 남북 교류,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안경근(安敬根), 안민생(安民生), 김성달(金星達)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민족 통일운동 단체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경근은 일제강점기 김구를 보좌하면서 밀정 숙청 작업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고 안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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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0일 대구의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통일운동을 위하여 결성한 단체. 민족통일촉진학생연구회(民族統一促進學生硏究會)는 1960년 9월 고려대학교의 전국대학생시국토론대회, 10월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정치학회 주최의 제5회 학생 토론회와 경북시국대책위원회의 발족, 11월 1일 서울대학교 민족통일연맹의 발기에 영향을 받아 11월 4월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학생 3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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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결성되었던 반유신 민주화운동 단체. 민주회복국민회의는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결집하기 위하여 1974년 11월 27일 이병린, 함석헌, 천관우, 김홍일, 강원룡, 이희승, 이태영의 7인 위원회를 중심으로 정계, 종교계, 학계, 문인, 언론인, 법조인, 여성계 등 각계 대표 71명 명의로 발족한 시민단체이다. 발족 당시 ‘민주회복 국민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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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지역 조직. 1971년 4월 19일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1970년대 최초의 재야 지식인 연합체였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결성 대회에서 김재준·이병린·천관우를 대표위원으로 선출하였고, 신순언·이호철·조향록·김정례·법정·한철하·계훈제를 운영위원으로 선출하였다. 1971년은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와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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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경북대학교 복학생들이 중심되어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민주화투쟁협의회(民主化鬪爭協議會)는 경북대학교 복학생들로 구성된 복학생협의회가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와 함께 학원 민주화운동과 사회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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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대구에서 창립한 민중문화 운동 단체. 1980년대 말부터 대구·경상북도 지역 문화운동에 분화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구·경상북도 지역 문화운동의 조직 변화는 우리문화연구회가 창립된 1985년부터 1988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약칭 민예총]의 결성 시기까지 1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급박하게 이루어졌다. 정치·사회적 배경은 운동 노선에 의한 재편으로 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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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백규천(白奎千)[1915~?]은 1915년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시국대책위원회와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자주적 남북통일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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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이승만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서 통일운동으로 확대된 변혁운동. 대구광역시 동구의 4.19혁명은 직접적으로 운동과 혁명을 촉발시켰다기 보다 허정과도내각과 장면정권 수립 이후에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민주운동과 민족모순을 해결하려는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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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대구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의 경북 조직.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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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 지역 3개 대학 대학생들이 결성한 학생운동 조직. 유신체제 말기 대구 지역 대학생들은 단일한 조직을 통하여 반유신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등 3개 대학이 연합하여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의 결성은 이후 대구 지역 학생운동 전개 과정에서 수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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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대구 성서공단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동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 성서공단노동조합(城西工團勞動組合)은 2002년 성서공단 내 굿맨손공사 등 소규모 사업장 해고자들과 ‘민중행동’ 활동가들이 함께 창립한 단체이다. 성서공단노동조합은 영세 기업 각자의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성서공단의 특성을 고려하여 만든 지역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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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신민당이 추진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 서명운동을 위한 현판식. 신민당과 민추협의 개헌현판식은 1986년 4월 5일 신민당과 민추협이 대구의 아세아극장에서 개헌 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거행한 정치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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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할동한 민족통일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1896년 6월 10일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정의부(正義府)를 거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 대구에서 자주적 남북통일을 전개하였다. 호는 석천(石泉)이고, 이관오(李冠五)·안사준(安士俊)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안중근(安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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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민족통일운동가 안민생(安民生)[1911~?]은 1911년 황해도 신천군 평라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한인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대구에 거주하며 자주적 남북통일운동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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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안잠(安潛)[1906~?]은 1906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1924년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를 중퇴하고,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평화통일운동을 벌였다. 남북학생회담을 지지하고 성원을 보내며 자주적 남북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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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야당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한국에서 대통령 선출을 위한 직접선거는 1952년에 이루어졌다. 그 뒤 1950년대에는 1956년, 1960년에 각각 선거가 있었다. 국회의원선거는 1948년, 1950년, 1954년, 1958년, 1960년에 치러졌다. 지방선거는 1954년, 1956년, 1960년에 시의원 선거, 1956년 1958년, 1960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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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전후 전국적으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기 위하여 구성된 국회 특별 조사반. 4·19 혁명 이후 국회에서는 6·25 전쟁 전후한 시기에 전국적으로 자행된 양민 학살을 조사하기 위하여 특별 조사반을 구성하였다. 이 특별반의 경북반은 주병환(朱秉煥)·윤용구(尹鎔球) 등 두 명의 국회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1960년 6월 2일부터 6월 6일까지 달성군 가창면과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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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영남대의료원에서 소속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인력 문제 해결, 임금인상과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 투쟁.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은 1987년 설립되어 1995년 현재 820명의 조합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노동조합은 1995년 5월 2일부터 7월 6일까지 8차례 임금인상 및 단체협상 갱신 교섭을 병원 측에 요청하였으나 결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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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대구 지역 영남대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영남대자율화추진위원회(嶺南大自律化推進委員會)는 영남대학교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운동과 사회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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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에서 벌어진 신다자간무역협상에 따른 농산물 수입 반대 운동. 개방만을 강제해오던 내외독점자본의 압력은 마침내 1989년의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라는 이름의 전면적인 농업재편을 위한 새로운 정책으로 집약되고, 「제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실행되었다. 그리하여 정부는 1990년부터는 ‘우루과이라운드[신다자간무역협상]’ 협상을 내세워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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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 대학 출신 문화운동 그룹들이 결성하였던 민중문화 연구 단체. 우리문화연구회[약칭 우문연]는 1983년 창간한 대구 지역 무크지 『일꾼의 땅』에 참여한 회원들을 주축으로 지역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하여 연희, 민요, 문학, 미술, 영화, 학술 부문의 문화 활동을 벌이면서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자 1985년 결성된 단체이다. 1980년대 초중반, 학원 자율화 시점에 대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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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활동한 통일 운동가. 이정상(李正相)[1911~?]은 1911년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상대리에서 태어났다. 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사회대중당과 경북민족통일연맹을 통하여 정당 활동과 자주적 남북통일, 이대악법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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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가 참가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 회장단 회의.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대표는 1980년 5월 16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55개 대학의 총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였다.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1980년 5월 14일 전국 27개 총학생회 회장단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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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에서 전개된 주한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반대운동. 1990년대 후반 민간차원의 남북교류가 추진되고 있을 때, 남북교류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가 요구되었다. 또 남북교류는 남북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방식인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에 대한 제고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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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1992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지역 민주화를 위해 창립된 학술운동 단체. 지방사회연구회는 대구지역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학술과 친목을 겸하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교수 및 연구자들은 지역 사회 및 민족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지역사회와 국가사회에 놓여 있는 여러 사회적, 민족적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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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구에서 대학 풍물 동아리 출신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 풍물굿패 마당은 1995년 대구 지역 대학 풍물 동아리 출신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문화운동 단체로 민주화운동과 연관된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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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수동에 있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대구 지회. 대구 지역 문화운동은 1980년 말과 1990년대 초 문화예술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결성되어 체계 없이 활동하는 상황이었다. 전국의 문화운동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1993년 8월 재야 운동 단체였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약칭 민예총]이 합법적 문화예술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으로 출범하면서 각 지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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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구에서 창립한 문학운동 단체.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韓國作家會議大邱慶北支會)는 1987년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민족문학의 창달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한 대구·경북민족문학회를 계승하여 문학인의 권익과 자긍심을 수호하고 문학의 저변 확대와 현실주의 문학의 거점 역할을 하기 위하여 2014년 3월 29일 새롭게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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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 계명대학교와 영남대학교 학생운동권에서 영남대학교 축제 기간 중 전개하기로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 학생 시위. 1979년 5월 계명대학교와 영남대학교 학생운동권은 카터 방한 반대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로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각 대학에서 사전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계명대학교에서는 축제 기간에 「백골난망이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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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시기 대구에서 전개된 혁신당과 사회대중당과의 통합 기구. 혁신당·사회대중당통합준비위원회 경북위원회는 혁신당과 사회대중당 당의 통합 교섭을 추진할 목적으로 만든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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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3월 달성군 가창면에서 양민 학살을 자행한 육군 본부 정보국 산하 대북 침투 특수 부대. 호림 부대는 1949년 2월 25일 육군 본부 정보국 산하에 대북 침투 특수 부대로 창설되어 달성군 가창면에서 양민 수십 명을 학살한 것으로 1960년 국회 특별 조사반의 조사에서 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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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구에서 교육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교사들의 교육운동 단체. YMCA중등교육자협의회대구지역회는 1981년 12월 대구에서 기독교 정신과 교육자적 신념에서 출발한 학습 소모임에서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교육 민주화운동을 펼치기 위한 교육운동 단체로 전환하며 대구·경상북도 교육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