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랑이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115
한자 安吉朗- 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안지랑이 유래」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 「안지랑이 유래」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관련 지명 안지랑골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양녕대군|앉은뱅이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안지랑이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안지랑이 유래」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안지랑이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안지랑이 유래」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공원 입구와 안일사(安逸寺) 일대의 골짜기가 안지랑골이다. 예로부터 안지랑골은 앉아서 물 맞고, 비 맞고, 놀기 좋다는 뜻에서 ‘안지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비가 자주 왔는데, 비가 오다가 중도에 그쳐 비가 안지랑골 밑에까지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지랑이 가서 물 맞고, 오다가 비 맞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뺨 맞는다는 말도 전한다.

안지랑이의 원래 이름은 ‘안좌령(安座嶺)’이었다.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이 피난 와서 안지랑이에 머물렀는데,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이고 자신이 편히 머물렀다 하여서 ‘안좌령’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말이 변하여서 ‘안좌령’이 ‘안지랭이’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안지랑골은 대구 중심지에서 보면 아지랑이가 가득 피어난 것처럼 보여 ‘안지랑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안지랑이의 계곡물에는 철분이 많아서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씻으면 가려움증이 가신다고 한다. 또 하반신 마비를 앓는 사람도 계곡물에서 씻으면 병이 나아 걸어 나갔다고 하였다. 옛날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을 앉은뱅이라 하였기에 골짜기 이름을 ‘안지랑이’로 불렀다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안지랑이 유래」는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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