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사의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114
한자 安逸寺- 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440[대명동 1480-1]
시대 고려/고려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안일사의 유래」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관련 지명 안일사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6동 산226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왕건
모티프 유형 사찰 유래담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안일사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안일사의 유래」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앞산[660.3m] 중턱에 있는 안일사(安逸寺)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사찰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안일사의 유래」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안일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대구 앞산에는 예부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877~?]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하여 오는 절이 있다. 바로 은적사(隱跡寺)임휴사(臨休寺), 안일사(安逸寺)이다.

안일사의 옛 이름은 ‘유성사(留成寺)’이다. 태조 왕건팔공산(八公山)에서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과 공산전투를 치르다 크게 패배한 뒤 은적사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유성사로 와서 편안히 쉬어 갔다고 한다. 이후에 ‘유성사’의 이름을 ‘안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도 안일사가 있는 안지랑골에는 왕건이 숨어들었다는 왕굴이 남아 있다.

한편 1915년 1월 15일 윤상태(尹相泰)[1882~1942], 서상일(徐相日)[1887~1962], 이시영(李始榮)[1882~1919] 등이 안일사에 모여 국권 회복을 위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을 결성하였다. 또 안일사에서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을 위하여 자금을 모으고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모티프 분석]

「안일사의 유래」는 사찰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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