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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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啓聖高 柔道部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새방로 171[상리동 49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범 |
설립 시기/일시 | 1931년 - 계성고 유도부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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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3년 - 계성고 유도부 제34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0년 - 계성고 유도부 제51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1년 - 계성고 유도부 제52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계성고 유도부 LA올림픽에서 계성고등학교 황진수 선수 금메달 획득, 황정오, 안병근 선수 은메달 획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 계성고 유도부 서울올림픽에서 계성고등학교 김재엽, 이경근 선수 금메달 획득 |
최초 설립지 | 계성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서구 새방로 171[상리동 494] |
현 소재지 | 계성고등학교 - 대구광역시 서구 새방로 171[상리동 494] |
성격 | 체육단체 |
전화 | 053-235-4159 |
홈페이지 | www.keisung.hs.kr |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계성고등학교 소속 유도팀.
[설립 목적]
계성고 유도부는 1931년 운동부 설립을 통하여 학생들의 건강한 신체 활동을 권장하고 유도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자 설립하게 되었다.
[변천]
계성고 유도부는 일제의 감시가 삼엄하던 1931년 창단되었다. 지금의 계성고등학교는 1906년 설립된 계성학교에서 시작되었는데, 계성학교가 대구 최초의 학교인 만큼 유도부의 전통도 깊다. 유도부가 창립되던 당시는 일제의 감시가 더욱 고조되었을 무렵이었으며, 일제가 자신들의 운동이라고 생각되었던 유도와 검도에 대하여 특히 조선인들이 기량을 발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학교마다 유도부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계성고등학교도 유도보다는 농구부에 집중하였다.
1970년에 접어들면서 계성고 유도부의 학생들이 전국체육대회에서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유도 단일 종목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우승 빗자루’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계성고 유도부가 명문이 된 데에는 여러 중학교에서 훌륭한 교사들이 유도 꿈나무를 계성고등학교 유도부로 진학시킨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9년 계성고에 부임한 대구농업고등학교 유도 선수 출신 교사 마동철이 중앙중학교나 대구초등학교, 동덕초등학교 등지에서 유도 꿈나무들을 발굴, 계성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계성고등학교를 빛낸 훌륭한 유도 선수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1984년 LA올림픽을 제패한 안병근 선수이다. 계성고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 이미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기도 한 안병근은 1984년 LA올림픽에 이어 1985년 서울세계선수권대회,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모두 우승하며 ‘유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다.
[현황]
계성고 유도부를 이끌어 왔던 마동철이 1998년 타계한 이후에는 1970년대 스타 플레이어였던 계성고등학교 출신의 이상식이 부임하여 그 전통을 이어 갔다. 이상식은 국제대회 입상 경력이 있는 유도인들의 모임인 ‘유맥회’에도 가입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치며 계성고 유도부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계성고 유도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 최초의 학교에서 올림픽 영웅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1970년대 계성고 유도부는 이미 유도 명문이었던 영신고등학교와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전국대회에서 입상, 결과적으로 대구에서 유도 올림픽 영웅을 배출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