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천동 유적3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44
한자 大邱 佳川洞 遺跡三
영어공식명칭 Daegu Gacheon-dong Yujeok3|Archaeological Site 3 in Gacheon-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산9-7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3월 30일~10월 8일 - 대구 가천동 유적3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가천동 유적3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산9-7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및 고려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가천동 유적3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3월 30일부터 2002년 10월 8일까지 진행한 다섯 개 지구의 발굴 조사 중 제2지구에 해당하며, 삼국시대 돌덧널무덤과 고려시대 건물터가 발굴되었다.

[위치]

대구 가천동 유적3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산9-7번지 일대에 있다. 천을산[156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쪽 비탈면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에는 가천동 고분군①, 남쪽에는 가천동 고분군②, 동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에는 가천동 유물산포지①이 조성되어 있다.

[형태]

대구 가천동 유적3에서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이 스물일곱 기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어 있다. 비탈면 위쪽에 활 모양의 주구(周溝)[무덤 주위를 둘러 판 도랑]를 설치하였고, 주구 내부에 두세 기의 돌덧널무덤이 잇닿아 있는데, 비탈면 아래쪽의 돌덧널무덤이 먼저 축조되었다. 하나의 주구 내에 포함되어 있는 돌덧널무덤들은 친연 관계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돌덧널은 판석을 이용하여 주로 눕혀 쌓기로 만들었으며, 별도로 유물을 함께 묻을 공간을 만들어 놓은 무덤도 확인된다.

돌덧널무덤에서는 토기와 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뚜껑, 굽다리접시, 뚜껑 달린 굽접시, 짧은 목 항아리[短頸壺], 굽다리 긴목 항아리[臺附長頸壺], 큰 항아리[大壺], 손잡이잔[把手附杯], 연질발(軟質鉢) 등이 출토되었고, 철기는 도끼[鐵斧], 투겁창[鐵鉾], 미늘쇠[有刺利器], 화살촉[鐵鏃], 낫[鐵鎌], 손칼[鐵刀子], 큰칼[大刀] 고리장식 큰칼[環頭大刀] 등이 출토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9호 돌덧널무덤인데, 금동관과 청동방울[靑銅鈴], 철방울[鐵鐸]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건물터는 동일 지역에 3차에 걸쳐 축조되었다. 1차 건물터는 직사각형으로 추정되며, 배수구와 두 개의 노지가 설치되어 있다. 2차 건물터는 사각형이며 1차 건물터가 폐기된 후에 축조되었고 ‘ㄷ’ 자 모양의 도랑이 설치되어 있다. 3차 건물터는 2차 건물터를 확대한 것으로 보이며, ‘ㄷ’ 자 모양의 도랑과 아궁이 시설로 추정되는 석열이 확인되었다. 건물터에서는 항아리, 사발[碗], 자기 등의 그릇 조각들과 철기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3차 건물터에서 청동 불상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가천동 유적3 발굴 조사 후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원래 지형이 남아 있는 조사 지역 서쪽 언덕에는 가천동 고분군①이 분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가천동 유적3에서 확인된 돌덧널무덤은 하나의 주구 내에 두세 기의 돌덧널을 연달아 배치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무덤의 형태는 대구 노변동 고분군, 달성 문양리 고분군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함께 묻힌 유물을 통하여 무덤에 묻힌 사람의 지위를 유추할 수 있는데, 9호 묘에서 금동관이 출토되어 가천동 유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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