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84
한자 自輓
영어공식명칭 Jaman
이칭/별칭 「손처눌의 자만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3년 - 「자만」 저자 손처눌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34년연표보기 - 「자만」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4년 - 「자만」 저자 손처눌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84년 - 『모당집』에 「자만」 수록하여 간행
배경 지역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손처눌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과 구국 활동을 한 손처눌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지은 만시.

[개설]

「자만(自輓)」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발발하자 대구의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2001년 발행한 『국역 모당선생문집(國譯慕堂先生文集)』에서는 「자만」의 제목을 「손처눌의 자만시」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자만」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명지쇠의오하한(命之衰矣吾何恨)[명이 쇠하여 약하여지니 내 무엇을 한스럽다 하겠나]

부초인생일과음(腐草人生一過音)[스러지는 풀처럼 인생은 한 번 지나가는 소리일세]

영부도유직계지(永負都兪稷契志)[정사를 논하였던 후직과 설의 뜻은 길이 저버리고]

다참개계성현심(多慚開繼聖賢心)[후학을 길러 주었던 성현 마음에 부끄러움 많도다]

음풍농월당년사(吟風弄月當年事)[바람 읊조리고 달 희롱하던 일은 지난날의 일이고]

생순귀녕차일침(生順歸寧此日忱)[살아 하늘에 순종하고 죽어 편안함은 오늘 알겠네]

지하수문비숙계(地下修文非宿計)[지하세계의 수문랑 되는 것은 마음속 숙원 아니고]

중천사우계유금(重泉師友契幽襟)[저승 황천에서 사우들과 회포 풀기를 약속하였었지]

[특징]

「자만」의 운자는 ‘침(侵)’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용사(用事)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한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의의와 평가]

「자만」손처눌이 만년에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스스로 지은 만시(輓詩)이다. 인생을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표현하고,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있다. 죽음을 앞둔 선비의 지난날의 포부와 아쉬움, 그리고 인생의 끝에서 깨달은 성현의 가르침을 노래하였다. 마지막 미련(尾聯)에서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먼저 간 사우(師友)를 그리워하며 시를 마무리하였다. 「자만」손처눌의 마지막 공력이 담긴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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