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초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도봉산 영국사에서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집현전 박사, 대사헌,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문집인 『사가집...
-
조선 전기 서거정이 양주의 누원에서 강희맹의 운에 차하여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집현전 박사, 대사헌,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문집인 『사가...
-
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견주(見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여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명이 견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898년(효공왕 2) 2월에 궁예(弓裔)가 휘하 장수인 왕건(王建)을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이 지역...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경기도(京畿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해 있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도봉구에 해당하였다. 본래 경기(京畿)는 왕도(王都)와 그를 둘러싼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京)’은 천자의 거주지가 있는 곳이며, ‘기(畿)’는 그를 둘러싼 지역을...
-
태백산맥의 철령 부근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서북부로 이어지는 산맥. 광주산맥은 우리나라의 척량산맥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으로 강원도를 지나 경기도의 동북부를 지나면서 험준한 산지를 형성한다. 산맥의 북부와 동부는 낮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부와 서부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특히 한강을 지나 남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크고 작은 구...
-
통일 신라 시대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경기도 양주시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각종 관직명과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漢化政策)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757년(경덕왕 16)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에 이르는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을 모...
-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및 양주시에 걸쳐 있는 산. 도봉산의 명칭은 큰 바윗길이 산 전체를 이루고 있어 ‘도봉(道峰)’이라 명명하였다는 설과 천축사·희룡사 등의 사찰에서 조선 왕조 창업의 길을 닦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 왕조의 흥업은 도봉산의 정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 도봉산은 지질학적으로 고생대부터 화강암의 지반이 융기 및 침식되어 형성되었으며,...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중부 지역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 도봉산에서 발원하여 흐르기 때문에 도봉천이라고 부르며, 하천 상류에 도봉 서원이 있었다는 데에서 서원천(書院川)으로 부르기도 한다. 도봉 서원은 조광조(趙光祖)를 기리기 위하여 1573년(선조 6) 양주 목사 남언경이 세운 서원이다. 또는 새의 둥지가 있는 하천을 의미하는 소원천(巢園川)의 발음이 변화한 것이라는 설도...
-
고구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양주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지리지2 한주(漢州) 내소군(來蘇郡)조에는 “내소군은 본래 고구려 매성현(買省縣)으로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견주(見州)이다. 영현(領縣)은 2개로, 중성현(重城縣)은 본래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적성현(積城縣)이다. 파평현(波平縣)...
-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하천. 방학천이라는 지명은 이 일대의 지명인 방학동에서 유래하였다. 방학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또는 조선 시대의 자연 마을 가운데 하나였던 방학골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중천(中川), 복개내, 복개천이라고도 부른다. 지방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는 방학천은 방학동의...
-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양주목(楊州牧)은 조선 시대 경기도에 속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관할 구역에 해당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양주목 해등촌면(海等村面) 일대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방을 다스렸는데, 이를 통해 군현 아래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의 지배력...
-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시대적 변동에 대한 내용. 선사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아직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도봉 지역은 한강 유역의 일부에 해당하므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까지 도봉 일대에서 선사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서남쪽을 흐르는 하천. 우이천(牛耳川)이라는 지명은 도봉산 자락에 있는 소의 귀처럼 생긴 봉우리인 소귀봉 또는 우이봉 아래를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연결하는 고개인 소귀 고개[牛耳嶺]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라는 의미도 있다. 우이천에 인접해서 쌍문동과 창동을 지나는 간선 도로의 명칭은 우이천로이다. 지방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는...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인간의 활동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의해 땅에서 형성되는 가시적·비가시적 경관을 포함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인구 집단, 상호 작용, 토지 이용 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즉 인문지리는 공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표상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내용을 주로 포함한다...
-
조선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조선시대 양주목 해등촌면은 그리 큰 행정 구역이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으로 정치·경제·사상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강북구 등 도봉구 인근 지역은 일부 한성부(漢城府)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도봉구 지역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인 성저(城底) 약 3.93㎞[10리]와 이웃한 양주목 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동쪽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하천.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 부분은 서원천(書院川)이라 하고, 도봉구 창동 부근에서는 한천(漢川) 또는 한내라고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중량포(中梁浦)는 속계(涑溪)라고도 부른다”는 기록이 있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따르면 “일명 속계라고도 하는 송계천(松溪川)이 양주...
-
조선 시대부터 1914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해등촌면(海等村面)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의 34개 속면(屬面) 가운데 하나였다. 지방 행정 체계로서 면(面)은 이미 고려 말부터 등장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비되어 성문 법전을 통해 규정되는 때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조선은 각 도(道) 아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