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좌우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376
한자 京畿左右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02년연표보기 - 경기좌우도 설치
폐지 시기/일시 1414년연표보기 - 경기좌우도 폐지
관할 지역 경기좌우도 - 서울특별시 동작구
관할 지역 경기좌우도 금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지도보기|신대방동지도보기|상도동지도보기
관할 지역 경기좌우도 과주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지도보기|본동지도보기|흑석동지도보기|동작동지도보기|사당동지도보기

[정의]

고려 말 조선 초에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 영역을 좌우 둘로 나누었다가 통합하여 설치했던 광역 행정단위.

[개설]

1391년 경기를 좌도와 우도로 나눈 후, 1402년 좌도와 우도를 통합하여 경기좌우도라고 하였고, 1414년 좌도와 우도를 합쳐 경기라 칭하면서 경기좌우도는 소멸하고 경기만 남게 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지리1, 왕경 개성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경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6, 경기에 관련 기사가 확인된다.

[내용]

1391년(공양왕 3) 1월, 기존의 경기 영역을 나누어 장단(長湍)·임강(臨江)·토산(兔山)·임진(臨津)·송림(松林)·마전(麻田)·적성(積城)·파평(坡平)을 좌도로, 개성(開城)·강음(江陰)·해풍(海豐)·덕수(德水)·우봉(牛峯)을 우도로 삼았다. 1394년(태조 3) 6월, 고을의 쇠하고 성한 것과 넓고 좁은 것을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의 범위를 수정하여 장단·파평·견주(見州)·사천(沙川)·포주(抱州)·풍양·서원(瑞原)·행주(幸州)·심악(深岳)·한양(漢陽)·부원(富原)·과주(果州)·철원(鐵原)·영평(永平)·승령(僧嶺)·삭녕(朔寧)·적성(赤城)·임강·마전·송림·연주(漣州)·고봉(高峯)·교하(交河)·금주(衿州)·양천(陽川)·남양(南陽)·안산(安山)·인주(仁州)·토산·안협(安峽)을 좌도에, 개성·강음·해풍·배주(白州)·연안(延安)·평주(平州)·재령(載寧)·강화(江華)·진강(鎭江)·하음(河陰)·교동(喬桐)·서흥(瑞興)·우봉·신은(新恩)·협계(俠溪)·수안(遂安)·곡주(谷州)·부평(富平)·동성(童城)·통진(通津)·수안(守安)·김포(金浦)·덕수를 우도에 소속시켰다.

1402년(태종 2)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를 합쳐 ‘경기좌우도’라 칭하였다.

[변천]

한양 천도 이후인 1395년(태조 4)에는 평주·수안·곡주·재령·서흥·신은·협계가 새 도읍과 거리가 멀다 하여 다시 서해도(西海島)에 속하게 하고, 광주(廣州)·수원(水原)·양근(楊根)·쌍부(雙阜)·용구(龍駒)·처인(處仁)·이천(利川)·천녕(川寧)·지평(砥平)을 경기에 예속시키되, 광주·수원이 거느린 고을은 좌도에 양주·부평·철원·연안이 거느린 고을은 우도로 삼았다.

1414년(태종 14) 연안·배주·우봉·강음·토산을 풍해도(豐海道)에 환속시키고, 이천(伊川)은 강원도로 예속시켜며, 충청도 여흥(驪興)·안성(安城)·양지(陽智)·양성(陽城)·음죽(陰竹)과 강원도 가평(加平)을 경기좌우도에 예속시키되, 경기좌우도를 ‘경기’라고만 칭하게 함으로써 경기좌우도는 사라지고 경기만 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말 조선 초에 과도기적 광역행정단위로 존재했던 경기좌우도는 태종 때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경기로 통합되면서 조선 시대 광역 지방제도인 8도제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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