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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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 |
영어음역 | Cheolgi |
영어의미역 | Iron War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이상수 |
[정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철기시대 이후로 사용되었던 철로 만들어진 각종 도구의 총칭.
[개설]
철(鐵)은 적철광, 황철광과 같은 형태로 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류가 도구로 만들어 이용한 것은 석기(石器)와 청동기(靑銅器) 다음이다. 철기는 현재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철기는 제조 기술상으로 보면 주조품(鑄造品)과 단조품(鍛造品) 등이 있다. 철기의 제조법에는 해면철제조법(海綿鐵製造法)과 선철제조법(銑鐵製造法)이 있다. 해면철제조법은 철광석과 숯을 섞어 야외 화덕에 넣은 뒤 불을 지펴 800~900℃ 정도의 온도에서 제련하는 것으로, 제련된 철은 탄소 함유랑이 극히 적고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반복해서 단조하여 철을 얇게 펴서 이를 겹쳐 철을 만든다. 반면, 선철제조법은 위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철광석을 완전히 녹여 쇳물을 만든 뒤 이것을 거푸집에 부어 주조하는 방법이다. 선철은 탄소 함유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단조가 불가능한데 이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차 가열하여 연성주철을 만든다.
청동기에 이어 새로운 금속으로 발견된 철을 인류가 최초로 이용한 예는 B.C. 4000년대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철제 구슬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자연산 그대로의 철을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B.C. 3000년대 초반이 되자 근동 지방의 시리아, 바그다드 같은 지역에서는 철을 정련(精鍊)하였다. 제련철(製鍊鐵)로 이루어진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제철단검(製鐵短劍)이었다.
철을 녹이기 위해서는 섭씨 1,000℃ 이상의 온도가 필요한데, 인류는 제련 기술이 발달하기까지 오랫동안 청동기만을 사용하였다. 본격적으로 철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B.C. 1400년경의 히타이트(Hittite) 왕국의 출현에 의해서이다. 약 200년경 후 히타이트 왕국이 멸망하자 그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들이 갖고 있던 철에 대한 지식이 근동 지방 전역에 보급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무기뿐 아니라 농기구까지도 제작되었으며, B.C. 10세기경에는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에서는 은대(殷代)의 유물로 청동도끼의 날에 철을 사용한 것이 가장 오래된 예이다. 당시에 일부 철기가 사용되었다고 하나, 주조의 철제 농기구가 등장하는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 후반부터이고, 단조의 무기가 만들어진 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온 이후였다.
[한국의 철기]
한국의 철기는 중국 전국시대 철기의 영향을 받아 북부 지역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여 점차 남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조쇠도끼[주조철부(鑄造鐵斧)]를 위시하여 농공구류가 우세한 양상을 띠고 있다.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B.C. 2세기경으로서, 이때부터 단조철기도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후기에는 점차 주조철기가 많아진다.
철기 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 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이 가속화되어 고대 국가의 형성과 성장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철기의 종류는 그 용도에 따라 농공구, 무기, 차마구 등으로 분류된다. 농공구에는 칼[刀]·도끼[斧]·끌[鑿]·낚시[釣]·송곳, 가래[鋤]·괭이[鍬]·낫[鎌]·반달칼[半月形刀]등이 있다. 농공구(農工具) 중 도끼는 제조법에 따라 단조의 도끼와 주조의 도끼로 나눈다. 단조의 도끼는 임의로 두드려 제작한 것으로 도끼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조의 도끼는 처음부터 주형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철기시대 초기에 일부 나타나고 있다. 그밖에 의창 다호리 유적에서 자루와 함께 출토된 판상쇠도끼가 있는데, 도끼나 자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중에는 철의 소재인 덩이쇠[鐵鋌]의 구실을 한 것이 많다.
무기(武器)에는 공격용과 방어용 무기가 있다. 공격용 무기에는 검(劍)·창[모(矛)]·꺾창[과(戈)]·민고리자루칼[소환두도(素環頭刀)]·화살촉[鏃]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발달된 무기로는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環頭大刀)]·극(戟)·화살대[노기(弩機)]등이 있다. 검에는 유경식(有莖式)과 무경식(無莖式)이 있고, 유경식은 단경식(短莖式)과 장경식(長莖式)으로 나누어진다. 대체로 장경식은 단경식보다 늦게 나타난다. 방어용 무기에는 갑옷과 투구가 있다. 갑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옷으로, 따로따로 주조된 철판을 결합하여 만든 판갑옷[단갑(短甲)]과 작은 비늘을 가죽이나 천에 덧대어 만든 비늘갑옷[찰갑(札甲)]이 있다.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으로 차양이 있는 것과 차양이 없는 것이 있으며, 차양은 없으나 반구형의 장식이 얹혀 있는 형식도 있다. 이외에도 방어용으로는 정강이가리개, 목가리개, 말얼굴가리개 등이 있다. 그밖에 차축두(車軸頭), 재갈 등의 차마구(車馬具) 와 용기인 동복(銅鍑)이 있다.
철기가 보급되면서 삼림의 개간이나 농경이 대규모화하는 등 농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철을 다루는 전문 집단이 등장하였다. 또한 철로 만든 무기는 대규모의 전쟁을 가능하게 하였고, 고대 국가 형성과 성장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릉의 철기]
강원 지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활발한 철기시대[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유적 발굴 조사를 통해 비교적 많은 철기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즉 춘천 중도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끌·철편·철도자(鐵刀子)·철겸·철제장방형고리, 춘천 신매리 주거유적 출토 철도자·환두도자(環頭刀子), 춘천 근화동 주거유적 출토 철슬래그, 춘천 우두동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기류, 춘천 율문리 주거유적 출토 철겸·철삽날, 춘천 천전리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편·환두소도(環頭小刀)·철겸·철삼지창, 춘천 장학리 주거유적 출토 철기편·철슬래그, 홍천 철정리 주거유적 출토 환두소도·철촉·철도자·철겸·철꺽쇠, 홍천 성산리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부·철겸·철삽날·철도자, 홍천 하화계리 주거유적 출토 철부·철촉·철도자·철꺽쇠, 춘천 중도 적석총 출토 철도자·철촉·철정, 횡성 둔내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도자·철정, 횡성 화전리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도, 원주 가현동 주거유적 출토 철촉, 원주 동화리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도자, 영월 팔괘리 주거유적 출토 철부·철꺽쇠·철슬래그, 영월 삼옥리 주거유적 출토 철도자·철슬래그, 영월 주천리 주거유적 출토 철도자·철슬래그, 정선 예미리 주거유적 출토 철촉·철낫·철톱·철도자, 철원 와수리 주거유적 출토 철경부동촉·철부·철겸·철도자, 동해 송정동 주거유적 출토 철삽날·철촉·철모·철겸·철부·철이지창·철집게·철망치·철슬래그 등이 알려져 있다.
한편 강릉 지역 또한 안인리 유적, 동덕리 유적, 교항리 유적, 방동리 유적, 강문동 유적, 초당동 유적, 병산동 유적, 금진리 유적 등 철기시대 주거유적이 다수 발굴되어 다양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들 철기시대 주거유적에서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철도자·철삽날·철도끼·철집게·철낚시바늘, 환두대도 등의 철기 관련 유물들이 일부 출토되었다. 특히 강릉 병산동 주거유적에서는 철기 제련 용구와 작업대가 확인되어 이곳에서 철기 제작을 직접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