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08
한자 永思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74[운림동 107-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한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영사재[운림동]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8년 - 영사재 1차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3년 - 영사재 2차 중건
현 소재지 영사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74[운림동 107-2]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개항기 순흥안씨 재실.

[개설]

영사재[운림동]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순흥안씨(順興安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시대 중기 문신인 남강(南岡) 안공(安珙)[1447~1530]을 모시고 있다. 안공은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149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辛巳誣獄)이 일어나 안공의 사촌인 당시 좌의정인 안당(安瑭)과 안당의 아들인 안처겸(安處謙)이 처형되자, 안공은 현재의 운림동으로 와서 지냈으며 스스로 촌부야노(村夫野老)로 칭하면서, 천문학과 지리학을 연구하고 시를 쓰면서 보내었다. 순흥안씨 문중에서 안공을 기리기 위하여 안공의 묘소가 있는 현재의 자리에 1887년(고종 24)에 영사재를 세웠다. 건물이 노후되자 1958년에 1차 중건하였으며, 2004년에 2차 중건하였다.

[위치]

영사재[운림동]는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74[운림동 107-2]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영사재[운림동]는1887년에 건립되었고, 1958년 1차, 2004년 2차 중건을 하였다.

[형태]

영사재[운림동]는 화강암을 다듬은 석재로 2단 기단을 만들고 그 위로 건물을 올렸다. 정면 4칸, 측면 3칸 구조이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황]

본당인 영사재 앞에 솟을대문 구조로 만든 추원문(追遠門)이 있으며, 추원문 앞에 '가선대부충청도관찰사순흥안공휘공기실비(嘉善大夫忠淸道觀察使順興安公諱珙紀實碑)'가 있으며, 영사재 입구에는 '순흥안씨영사재(順興安氏永思齋)'가 새겨진 돌이 있다. 추원문과 영사재 사이에도 중건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영사재[운림동]는 관직에 있다가 광주로 온 조선시대 유학자의 생활상과 그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선조를 기리는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참고문헌]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http://www.gjsgcc.or.kr)
  • 무등산 순흥안씨 영사재(https://blog.daum.net/kings7/1180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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