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마을의 명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479
한자 -明堂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 「내지마을의 명당」김영조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내지마을의 명당」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내지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지도보기
채록지 내지마을 -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문씨
모티프 유형 명당에 묏자리 쓰기|꾀로 명당자리 잡기|명당 빼앗기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에서 명당 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암소 등은 마을의 안산으로 명당자리이다. 문씨가 이 명당자리에 묏자리를 쓰기 위해 꾀를 내어 차지했다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9년 광주직할시 동구 내남동에 거주했던 제보자 김영조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199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내지마을 앞산에는 암소 등처럼 생긴 작은 혈이 있었는데, 예전부터 명당이었다. 문씨는 그 자리에 묘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 자리는 마을의 안산이라서 마을 사람들은 묘를 쓰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자 문씨는 꾀를 내었다. 문씨가 마을 앞으로 상여를 메고 들어오니 마을 사람들이 나와 앞을 막아섰다. 문씨는 마을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해가 지자 상여를 놓아두고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문씨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시신을 옮겨 명당에 묘를 쓰고 돌아갔다. 문씨가 나타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상여를 열어 보니 시신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문씨에게 속은 것을 알고, 묏자리에 가 보니 새로 쓴 묘가 있었다. 묘는 한 번 쓰면 함부로 파헤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문씨에게 보복하려고 묘소 주령(主嶺)[연이어 있는 고개 중 가장 높은 고개]의 지레목을 잘랐다. 이로 인해 문씨 집안에서는 째보[언청이]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모티프 분석]

마을사람들이 명당자리에 묘를 쓰는 것을 반대하자 꾀를 내어 묏자리를 얻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 남의 눈을 속여 매장하는 암장(暗葬)이나 투장(偸葬) 등이 발생하였고, 구비설화의 소재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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