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당 보문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46
한자 水月堂普文塔
영어공식명칭 Bomun Pagoda of Suwoldang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염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지도보기
성격 부도
재질 석재
크기(높이) 약 1.2m[높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증심사 일주문 왼쪽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개설]

수월당 보문탑(水月堂普文塔)은 증심사(證心寺) 일주문(一柱門) 왼쪽 축대 위에 있다. 축대 위에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3기의 탑과 3기의 부도, 17기의 비가 부도·비군을 이루고 있다. 이 중 맨 앞에 있는 3기의 부도 중 맨 왼쪽의 부도가 수월당 보문탑, 그 오른쪽의 부도가 월암당대사 민성탑(月岩堂大師敏性塔)이다. 증심사의 부도·비군은 원래 증심사 입구의 석조 계단 오른쪽에 있는 부도와 비를 정리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옮기기 전의 위치도 원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증심사 일주문 왼쪽에 있다.

[형태]

수월당 보문탑의 원래 높이는 약 1.5m이나, 현재는 지대석(地臺石)이 매몰되어 있어 약 1.2m이다. 수월당 보문탑은 일반적인 부도와 다르게 기단부에 귀부(龜趺)가 있다. 상륜부는 모두 사라졌다. 기단부는 귀부와 방형의 하대석(下臺石)으로 구성되었다. 방형의 높은 자연석을 지대석으로 삼았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살펴볼 수 없다.

귀부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일반적인 귀부와 다르게 용두(龍頭)가 위를 향하고 있으며, 왼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리고 있다. 『광주의 불적』에서는 용두 위에 9엽의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졌으며, 용두의 왕방울처럼 튀어나온 눈·수염의 모습 등에서 해학적이면서 서민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파악하기 어렵다. 귀부 위에는 방형의 하대석과 계란형의 탑신이 한 돌로 이루어졌다. 하대석에는 정면을 제외한 3면에 연화문을 돋을새김하였다.

옥개석(屋蓋石)은 원형의 상륜 괴임과 한 돌로 이루어졌다. 옥개석은 아주 둔중하다.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은 급하다. 내림마루는 아주 뚜렷하며, 처마는 부드럽게 반전한다. 낙수면에는 기왓등을 표현하였다. 『광주의 불적』에서 내림마루의 끝부분에는 용두가 새겨졌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

계란형 탑신의 정면에는 '수월당보문(水月堂普文)'이라는 탑호(塔號)가 음각되어 있다. 수월당 보문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건립 연도를 알려 주는 명문(明文)은 없다.

[특징과 평가]

수월당 보문탑은 전반적으로 치석(治石)과 조각 수법이 많이 간략화되고 퇴화되었다. 수월당 보문탑 용두의 형태는 매우 독특한데, 이는 1715년(숙종 41)에 건립된 월암당대사 민성탑의 옥개석 용두와 형태가 같아 수월당 보문탑은 1715년(숙종 41) 전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월당 보문탑처럼 부도의 기단부에 귀부가 표현된 예는 광주의 부도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부도에서도 살펴볼 수 없는 매우 드문 예이며, 형태 또한 아주 독특하기 때문에 귀부는 수월당 보문탑의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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