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8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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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褒忠祠扁額 |
이칭/별칭 | 포충사 현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947-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제작 시기/일시 | 1603년 6월 - 포충사 편액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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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포충사 -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947-4] |
성격 | 현판[편액]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140㎝[높이]|60㎝[너비] |
소유자 | 포충사 |
관리자 | 포충사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포충사의 편액.
[개설]
조선시대 사액(賜額) 사우(祠宇)인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褒忠祠)의 편액(扁額)이다. 해서체로 끝에 ‘만력삼십일년유월일선사(萬曆三十一年六月日宣賜)’라는 기록이 있어 1603년(선조 36) 6월 사액 당시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필가였던 석봉 한호(韓濩)[1543~1605] 노년기의 필체이다. 『포충사지(褒忠祠誌)』에 “사우는 3칸 기와집 한 동이고, 액호 포충사는 석봉 한호 필체이다[祠宇三間瓦葺一棟額號褒忠祠石峯韓濩筆]”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형태]
액자 형식 판재의 변죽에 꽃무늬를 그려 넣었다.
[특징]
사액 당시 선사(宣賜)한 것이며 당대 명필 석봉 한호의 필체이다.
[현황]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의 호남 의병장 고경명과 아들 고종후, 고인후, 그리고 유팽로, 안영을 배향한 사우로 1601년 창건하였고, 1603년에 사액을 받았다. 포충사는 고경명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우를 보존·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사액 사우의 편액으로 사액 당시 선사된 점, 명필 한호의 필적이라는 점, 전라도에서 유일한 사우의 편액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예술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