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군시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754
한자 全南郡市製絲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선봉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6년 5월 25일연표보기 - 전남군시제사 설립
최초 설립지 전남군시제사 - 전라남도 광주군
성격 제조업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었던 제사 공장.

[개설]

일제강점기 때 전라남도는 전국 유수의 누에고치 생산지였으며,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광주에도 제사 공장이 하나씩 늘어났다. 전남군시제사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었던 제사(製絲)[누에고치나 솜 따위로 실을 만듦] 공장이다.

[설립 목적]

전라남도 광주군 지역에서 누에고치의 매매 및 명주실의 제조 판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제사 공장을 설립하였다.

[변천]

전남군시제사는 자본금 200만 원, 2만 평[6만 6115m²] 규모로 1926년 5월 25일에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남군시제사는 종업원 700명이 10만 4000근의 생사(生絲)[삶아서 익히지 아니한 명주실]를 생산하는 회사로서, 당시 조선에서 손에 꼽히는 대규모 제사 공장이었다.

[현황]

전남군시제사는 당시 광주군 인구가 10만 39명[일본인 5,143명, 외국인 200명 등]으로 노동력이 풍부하고, 호남선 및 남철선이 역내를 관통하는 등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는 점, 목화 농사와 양잠 생산량이 높다는 점, 그리고 호남은행을 비롯하여 식산은행 광주지점, 금융조합소 등이 있어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광주군 지역에 설립될 수 있었다. 1929년 전라남도의 누에고치 생산량이 4만 석을 넘게 되었는데, 당시 전남군시제사에서는 2만 석밖에 소화하지 못하여 종방광주제사, 약림제사 등이 차례로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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