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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434
한자 鍊眞會
이칭/별칭 연진회미술원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55[운림동 85-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은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연진회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 연진회 해체
개칭 시기/일시 1978년연표보기 - 연진회에서 연진회미술원으로 개칭
최초 설립지 연진회관 -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지도보기
현 소재지 연진회미술원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55[운림동 85-1]지도보기
성격 문화예술 단체
설립자 허백련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 있었던 전통 문화 교육 단체.

[개설]

창립자인 남종화의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의 본관은 양천, 호는 의재(毅齎)이며 전라남도 진도 출생의 한국화가이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했고, 1937년까지 조선전람회에서 여러 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에서 이어진 남종화의 전통을 광주·전남 지역에 뿌리내린 인물이다. 1938년 광주 지역에 정착하여 호남 서화계의 후진 양성과 민족주의 교육의 실현을 위해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켰다. 연진회는 호남 지역 서화가들의 대표적 모임으로 발전하였다.

[설립 목적]

‘연진(鍊眞)’은 참됨을 연마한다는 뜻으로, 연진회는 서화 전승과 후진 양성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변천]

허백련은 원래 1938년 광주로 내려가 서화회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전주화회(全州畵會)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변관식의 격려에 고무되어 연진회를 창설하였다. 허백련을 중심으로 정운면(鄭雲勉), 구철우(具哲祐), 허행면(許行冕), 정상호(鄭相浩), 노형규(盧衡奎), 노주봉(盧周鳳), 최한영(崔漢泳) 등 36명이 발기인으로 기록되었다.

1939년에 제 1회 연진회관 기금 마련을 위한 회원전이 열렸고, 이 해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 연진회관이 세워졌다. 허백련과 가까웠던 김은호, 변관식이 찬조 출품하였다. 1940년에 제 2회 연진회전이 열렸다. 연진회는 1944년경에 문을 닫았으나 1978년 고 허백련의 유지에 따라 연진회미술원이 연진회의 뒤를 이었다. 구철우가 초대 원장을 역임하였다.

연진회 출신 작가는 허의득, 이상재, 김옥진, 오우선, 문장호, 박행보, 조승현, 이강술, 양계남, 장찬홍, 박소영, 김춘 등이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허백련은 회원들을 일주일에 하루씩 모이게 하여 체본을 그려주거나 써주어 이를 임모하도록 했고, 그것을 강평하고 회관 안에 전시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찾아 고쳐 나가게 했다. 1946년 허백련오방 최흥종이 거처하던 오방정을 산 후 그 자리에 춘설헌(春雪軒)을 세웠고,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남도 예술의 맥을 이어갔다.

[현황]

2021년 기준 연진회는 연진회미술원으로 재창립되어 전통문인화를 교육, 전시하는 기관으로 비정기적인 회원전을 개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연진회는 광주 지역에 남종화를 부흥시키며, 현대 화단에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 나가는데 기여하였다. 허백련의 문하에서 정운면, 허행면, 김정현, 조복순 등 뛰어난 신진 화가들을 배출하였고, 이후 김옥진, 문장호, 박행보, 이상재, 김춘, 김화래, 박소영, 양계남, 이강술, 장찬홍, 최덕인, 허달재 등 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연진회관은 허백련의 체본을 얻고자 하는 지역 유지들이 모여들면서 교유의 장소가 되기도 했고,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한 민족주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4.06.10 내용 추가 연진회 출신 작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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