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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당 전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206
한자 永同堂傳說
이칭/별칭 전영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 「영동당 전설」 『경산문화유적총람』에 수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2년 - 「영동당 전설」 심의석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영동당 전설」 「전영동」이라는 제목으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관련 지명 영동당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흥산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전영동|동래부사|마을 사람들
모티프 유형 민간 신앙|신당 숭배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영동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영동당 전설」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서쪽 들 가운데에 있는 영동당의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려 시대 전영동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생전에는 호랑이를 타는 등 신이한 행적을 남겼으며, 죽을 때 자신이 풍신이 되어 돌림병을 퍼트리는 귀신을 물리치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영동당에서 풍년과 수복을 비는 제사를 지냈는데 최근에는 지내지 않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경산문화유적총람』에 「영동당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채록 장소와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2005년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간행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는 「전영동」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2002년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흥산리 심의석[남, 당시 83세]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영동당은 ‘전영동’이라는 인물을 모신 당으로 전해져 온다. 남천면 송백리 서쪽 들녘, 200~300년 된 참나무 숲 사이에서 있는데 현재는 허물어져 가고 있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전영동은 고려 공민왕 때 사람이다. 그가 태어나자 3년 동안 인근에 초목에 잎이 돋지 않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무엽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현리가 된 전영동은 고을 밖 30리 멀어진 곳에 살며 진시(辰時)에 출근해 신시(辛時)에 퇴근 했는데 그는 항상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또 평생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무만 먹었다고 전해진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죽을 무렵에 유언하기를, “죽으면 풍신이 되어 생민에게 돌림병을 옮기는 귀신인 이귀[여귀(厲鬼)의 오기로 보임]를 물리치겠노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고을 사람들은 이날이 되면 무와 찰밥으로 풍년과 수복을 비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영동당은 원래 경산시 남천면 구일리옥곡동 사이 구 도로 옆에 있었다 하는데 그 앞들 이름을 ‘당앞들’이라고 한다. 이 사당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데, 어느 날 동래부사가 그 앞을 지나가다 말에서 내리지 않자 말의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한다. 그러자 화가 난 동래부사는 영동당을 불태우게 하였다. 사당에 불이 붙자 사당 안에 모신 신주가 날아가 남천면 송백리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신주가 내린 자리에 사당을 짓고 그 동네에서 가장 큰 무가 생산되는 집 주인이 제주(祭主)가 되어 매년 정월대보름날 제를 지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좋은 날은 받아 정성을 모아 깨끗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제주는 제사 지내기 전 찬물에 목욕하고 밤 12시경에 제사를 지낸 후 마을 사람들이 동회관 등에 한자리에 모여 제사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추풍령 이남 지방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룻날 새벽에 새 바가지로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풍년과 수복을 비는 영동 소지를 올려왔다. 영동 소지 올린 종이는 연을 만들어 멀리 띄워 보냈는데 그 소지 종이로 문을 바르면 눈앞에 문종이 같은 것이 생긴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또 음력 2월에는 빈소의 문을 열지 않고 개고기를 먹지 아니하였다고 하며, 제사가 쓸 벼를 말릴 때 참새가 그 벼를 까먹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도 한다. 현재 영동제는 6·25 이후 지내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영동당마저 완전히 허물어져 ‘전영동 전설’의 명성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영동당 복원을 원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영동당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민간신앙’이며 구체적으로는 ‘신당 숭배’이다. 일반적으로 민간신앙, 신당 숭배는 예로부터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대상을 해쳐 화를 자초한 이야기로, 신령의 노여움을 풀자 마을이 평온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영동당 전설」에서는 동래부사가 신당인 영동당을 불태우자 신주가 남천면으로 날아갔을 뿐 별다른 화가 초래되지는 않는다. 또한 돌림병을 옮기는 여귀를 물리쳐주는 영동당 제사를 현재는 지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영동당이 완전히 허물어져 별다른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전염병이 더 이상 신령의 노여움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현대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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