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51
한자 八龍齋
영어공식명칭 Palyongjae Hous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한사길 38-1[한사리 5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순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팔용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5년 - 팔용재 증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6년 - 팔용재중수비 건립
현 소재지 팔용재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한사길 38-1[한사리 551]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경주 최씨 돈옹공파 문중
관리자 경주 최씨 돈옹공파 문중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개설]

팔용재(八龍齋)는 조선 후기 경주 최씨 최한중(崔翰重)이 건립한 서당이 효시가 된다. 현대에 들어 서당의 기능은 소멸되고, 재실(齋室)로 활용되고 있다.

[위치]

하양여자중학교 옆을 지나는 지방도 제919호를 따라 남쪽 경산시 하양 읍내 방면으로 640m 가량 이동하면, 도로 우측 편에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를 가리키는 표지석이 나온다. 표지석을 따라 400m 정도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민가 사이 낮은 언덕에 팔용재가 위치해 있다. 한사리는 1510년(중종 5)에 경주 최씨 최옥곤(崔玉崑)이 처음 입향한 곳으로, 후손들이 점차 확산되면서 경주 최씨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변천]

팔용재는 최한중의 가학을 이어온 서당이 점점 쇠락하자 1832년(순조 32)년에 서당의 고실(古室)을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로 옮겨오면서 건립되었다. 1937년까지 강학 기능과 경주 최씨 문중의 제향처로 활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이 서서히 퇴락하였다. 2005년에 후손 최규식(崔圭軾)의 경제적 후원과 문중의 공론으로 건물을 중수하고 일각문(一角門) 등을 증축하였다. 이후 강학 기능은 사라지고 문중의 제향 기능만 남았다. 2006년에 마당 앞의 담장 왼편에 팔용재 중수를 기념하여 팔용재중수비(八龍齋重修碑)를 세웠다.

[형태]

팔용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왼쪽에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오른쪽에 2칸의 대청마루를 깔아 연결하였다. 왼쪽에 두 개의 기둥을 두어 함실(函室)[부뚜막 없이 불길이 바로 고래로 들어가게 만든 아궁이]을 이루며, 함실의 상부에는 기적지붕을 얹었다. 기둥은 전면에만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가구 형식은 대량 위에 동자주 대공을 세운 3량가이다. 건물의 기둥이나 대청 뒷면의 문틀 등 일부 부재에서 재실의 건립 연대보다 오래된 건축 수법이 확인된다. 팔용재를 건립할 때 다른 건물에 사용되었던 부재를 활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팔용재는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후학을 양성하고 강학하였던 서당의 기능은 소멸되었고, 경주 최씨 돈옹공파의 문중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팔용재는 조선 후기 이후 경산 지역에 세거한 경주 최씨 가문의 문중 활동과 가학의 전승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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