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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면 직전리 문씨 고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927
한자 北川面稷田里文氏古宅
영어의미역 Old House of Mun Clan in Jikgeon-ri, Bukcheon-myeon
이칭/별칭 남평 문씨 고택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19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화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1191 지도보기
성격 고택
소유자 문여황
관리자 문여황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평 문씨 문중의 고택.

[개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직전마을남평 문씨(南平文氏)는 문선공(文宣公) 문익점(文益漸)[1329~1398]의 후손으로 충선공 이후로는 강성[산청군 단성면, 당시에는 진주 관할]을 관향으로 하여 강성 문씨(江城文氏)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이곳에 터를 잡아 대대로 살아왔다.

[위치]

대부분의 하동 지역이 섬진강의 수계(水系)에 속하는 반면, 하동군 동쪽 경계에 있는 옥종면북천면, 진교면은 다르다. 옥종면은 남강 수계이고, 북천면은 남쪽의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곤양천 수계이다. 서쪽으로 황치산의 황토재 높은 고개를 두고 있어 옥종면과 함께 진주와 이웃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북천면의 남쪽에는 지리산의 지류로 내려온 명산으로 이름 높은 이명산이 있는데, 그 북쪽 자락이 내려오는 직전마을에 문씨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입향 시기나 건축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씨 고택의 안채가 임진왜란 직후인 1592년(선조 25) 건축한 구성과 규모 그대로라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다. 이 집안은 대대로 하동 일원에서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현재는 종손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등 지역의 지도적 역할을 충실히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

주거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형이 북서향으로 놓여 있어 안채는 지형의 방향에 따라 배치되어 있지만, 사랑채와 대문채는 안채와 직교되게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안채의 좌향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일반적 구성에 맞춘 것과 달리, 동적인 사랑채 및 대문채의 좌향은 진입 방향을 향하면서도 남쪽을 면하도록 하여 기능성과 환경적 적응성을 동시에 취할 수 있게 배치한 융통성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에 건축된 사랑채가 실학적 실용성을 적용한 배치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 구성은 후면에 넓은 텃밭을 두고 가로 방향으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경사가 심한 지역에서 평탄한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울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여기에서 전체적으로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고저 차이를 극복하고 동선의 원활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대문채는 평대문으로 3칸의 초가집 구조이고, 문간방과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마당은 좌우 양쪽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위쪽인 동남쪽 화단에는 나무의 직경이 1m가량 되는 큰 목련이 있다. 사랑채는 전면 5칸, 측면 1.5칸으로 된 맞배집으로 양쪽 끝은 부섭지붕을 달았다. 기단은 사랑채의 좌우로 경사진 지형으로 윗면은 평탄하지만 좌우 높이가 다른 흘림 기단이 형성되었는데, 서쪽 끝 사랑마루는 바닥 높이가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누마루처럼 2층의 구조로 형성되게 하였다.

2칸의 사랑방 앞으로는 퇴를 두고 윗방 사이에 중문간을 두었는데, 그 쓰임이 적기 때문인 상부에 책방을 두고 아래는 사랑부엌으로 사용되도록 하였다. 따라서 중문간의 상징적인 문만 형성되어 있는데, 그 앞으로 주두 구성을 한 활주를 세워 치장을 한 모습이 여느 집과 다른 풍모를 자아낸다.

또한 사랑방 앞 퇴의 두 기둥은 원주로 되어 있는데, 그 굵기가 상대적으로 굵어 위세가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마루는 측면과 후면으로 퇴를 두어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그 상부의 부섭지붕과 함께 이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가구 구성을 볼 수 있는 예이다. 사랑방은 원래의 구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랑채의 후면에는 작은 정원을 조성하였고, 그 옆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안마당이 펼쳐져 있다.

북서향인 안채는 기중 기단에 높직이 자리하고 있지만, 초가의 구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원형의 구조를 변형하지 않은 보수성이 잘 드러난다. 전면 4칸, 측면 1.5칸으로 부엌, 안방, 마루, 건넌방의 대표적인 남부 지방 민가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부엌을 제외하고는 전면에 퇴를 둔 것은 조선 후기의 일반적 특성이고, 마루의 전면에 문을 단 것은 남부 해안 지방의 일반적 공통점이다. 이 집에서는 마루의 문을 세 짝의 분합문으로 구성하여 정성을 들인 모습을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북천면 직전리 문씨 고택은 정확한 건축 연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 중기의 안채와 조선 후기의 사랑채로 구성된 반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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