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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유수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353
한자 華城留守府
영어공식명칭 Hwaseong-Yusub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경기도 화성시|수원시|오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 시기/일시 1793년연표보기 - 수원도호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
폐지 시기/일시 1895년 - 화성유수부에서 수원군으로 개편
소재지 화성유수부 - 경기도 화성시|수원시|오산시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수원·오산 지역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화성유수부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도호부 읍치가 자리한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팔달산 아래에 새로운 읍치를 조성하면서 탄생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수원 화성'은 화성도호부를 둘러싼 성곽이다. 구읍치가 있던 화산은 현재 지명도 화산인데, '화성 융릉과 건릉'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일대에 해당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화성유수부수원도호부가 1793년(정조 17)에 유수부로 승격되면서 개칭된 명칭이다. 수원도호부의 유수부 격상은 영우원천장[1789]에 따른 신읍치 조성, 정조의 친위대인 장용영 외영의 수원 지역 설치[1793] 등과 연관된 조치였다. 표면적으로는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성하고 보호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조 자신의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다. 화성유수부의 초대 유수로 임명된 인물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었다. 한편, 화성유수부 설치 이듬해인 1794년부터는 채제공의 주도 아래 화성 성역이 시작되었다.

[조직 및 담당 직무]

화성유수부는 행정 조직과 군사 조직의 2원 체제로 운영되었다. 유수[정2품]가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고, 행정의 구체적 임무는 판관이, 군사 임무는 중군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는 구조였다. 화성유수부의 행정 조직은 종5품 판관 1인, 무관 정3품 중군 1인, 종5품 영화도 찰방 1인, 무관 종9품 수문장 2인, 종9품 검률 1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화성유수부 관할 군사 조직은 중군 위주로 조직되었다. 중군은 휘하에 대솔군관 5인을 비롯하여 별효사 좌우열장 각 1인, 오사 파총 각 1인, 별오사 파총 각 1인, 협수겸파총 1인, 둔아병 파총 1인, 척후장 1인, 오사 초관 25인, 별 군관 100인, 난후아병장 1인, 주대책응장 1인, 돈대장 6인, 당보장 12인, 복병장 12인, 독산성 초관 5인, 별오사 초관 28인, 협수 초관 2인, 둔아병 초관 3인, 난후아병 초관 3인, 주대책응 초관 4인, 지구관 10인, 교련관 8인, 기패관 40인, 별무사 40인, 수첩군관 42인, 토포군관 27인, 봉수 별장 1인, 봉수 감관 13인, 마의 1인 등을 두었다.

[관련 기록]

화성유수부에 관한 기록은 1831년(순조 31) 편찬된 『화성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화성유수부의 연혁을 비롯하여 소속 관원과 속읍, 방리(坊里), 호구, 전결, 부세 등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당시 화성·수원 지역에 대한 기본 정보를 다수 수록하고 있는 중요 사료이다.

[변천]

화성유수부는 유수부 승격 과정에서 광주부유수부의 일용면[지금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정자동·송죽동 일대]과 송동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야목리·원리 일대] 지역을 편입하였는데, 그 밖에는 수원도호부 때와 비교하여 관할 구역에 큰 차이는 없었다. 한편, 1802년(순조 2) 장용영이 혁파되자 화성유수부에 두었던 장용영 외영은 총리영(摠理營)으로 개편되었고, 유수가 총리사(摠理使)를 겸하게 되었다. 화성유수부는 이후 19세기 말까지 유지되다가 1895년 을미개혁 때 지방 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수원군으로 개편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성유수부의 설치와 운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추진한 정치 개혁 및 왕권 강화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장용영 혁파에서 드러나듯이, 정조 사후 권력을 잡은 벽파 세력은 정조 대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에 따라 화성유수부의 위상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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