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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360
한자 同化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시대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동화역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있던 역.

[개설]

동화역(同化驛)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던 역으로, 양재도(良才道)에 속하였다. 한양과 과천, 수원, 충청도를 잇는 역로상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중요성을 가졌다.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동화역이 속한 양재도를 따라 한양으로 북상하기도 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동화역은 중앙과 지방 사이의 통신 및 관물의 수송을 위해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동화역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충청주도(忠淸州道)의 속역 34곳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선 시대의 양상은 『세조실록』, 『경국대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내용]

동화역의 운영 방식이나 규모에 관해 구체적으로 전하는 자료는 없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수원부에 역노(驛奴) 8명과 대마(大馬) 1필, 복마(卜馬) 4필이 배속되어 있었는데, 이 중 일부를 동화역에서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변천]

동화역은 고려 시대에 전국적으로 역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는 남경(南京)[지금의 서울특별시]과 충청도를 잇는 길목을 중시하여 동화역을 포함한 34개의 속역을 충청주도에 배치하였다. 충청주도의 역 중 30개 역은 청주목 관내에 있었고, 동화역을 포함한 나머지 4개 역은 남경 소속의 수주(水州)[지금의 경기도 수원시]에 있었다.

동화역은 이후 조선 초에 역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동화도의 중심 역이 되었다가, 다시 양재도에 병합되었다. 정조 대에 양재도가 영화도(迎華道)로 개편될 때 청호역(菁好驛)·장족역(長足驛)과 함께 혁파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화역은 한양과 충청도를 잇는 중요한 역로인 양재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조선 시대에 화성 지역이 갖는 지리적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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