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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36
한자 潘南 朴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반남 -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입향지 반남 박씨 입향지 - 경기도 화성시 동탄동
세거|집성지 반남 박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동탄동|반월동지도보기|봉담읍 세곡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응주
입향 시조 박찬

[정의]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찬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반남 박씨 시조는 고려 시대에 반남[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지역 호장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이다.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생각되나 계보가 확인되지는 않는다. 반남 박씨는 박응주 이후 오랜 기간 반남 지역의 향직을 맡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 건국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주요 벌열, 세도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반남 박씨는 화성 지역 유력 양반 가문 중 하나였으며, 옛 동탄면 영천리, 반송리, 석우리와 태안읍 반월리, 기산리에 주로 거주하였다. 반송리에는 세양공파(世襄公派) 파조 박강(朴薑)의 부조묘(不祧廟)와 종가가 있었고, 석우리에는 문중의 위토(位土)가 있었는데, 1951년 당시 5만 1,012㎡[1만 5,431평]에 달하였다. 반남 박씨는 화성 지역의 또 다른 유력 성씨인 남양 홍씨와 많이 혼인하였다.

[입향 경위]

반남 박씨는 대략 1600년대에 화성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입향조는 박찬(朴璨)으로, 옛 동탄면 석우리에 정착하였다. 박찬의 조카 박대하(朴大夏)도 박찬의 뒤를 이어 옛 동탄면 영천리에 입향하였다. 석우리의 박씨들은 박찬의 호를 따라 동곽자공파(東郭子公派), 영천리의 박씨들은 박대하의 아버지 박려(朴瓈)의 관직을 따라 승지공파(承旨公派)라 한다. 한편, 옛 반송리의 종가는 19세기 말에 화성 지역으로 들어왔다고 전한다.

[현황]

반남 박씨 화성 지역 동성 마을은 1930년대 조사에서 동탄면 영천리[30세대], 태안읍 반월리[38세대], 봉담읍 세곡리[22세대]가 확인되었다. 1950년대에는 영천리[35세대], 반월리[30세대], 세곡리[26세대] 외에, 동탄면 반송리[20세대]가 추가로 보고되었다. 그 외에도 동탄면 오산리 오미마을과 비봉면 유포리에서도 반남 박씨 거주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한편,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총 286세대 1,289명의 반남 박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2,297명이 확인되었다.

[관련 유적]

반남 박씨 관련 유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중앙로 438-18에 있는 '반남박씨 묘역'이 있다. 2001년 9월 14일 화성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10월 23일 화성시 기념물로 재분류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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