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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606
한자 金大乾
영어공식명칭 Kim Daeg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3년연표보기 - 김대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김대건 좌척후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6년 - 김대건 경원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9년 - 김대건 화답사로 후금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김대건 후금에 파견
활동 시기/일시 1634년 - 김대건 함경도 감영에서 접응사로 근무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김대건 전라도병마절도사
활동 시기/일시 1639년 - 김대건 경기수군절도사
활동 시기/일시 1641년 - 김대건 동지중추부사 재직 중 금주영병장 겸직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김대건 의령부사로 임명되었으나, 건강 이유로 사임
묘소|단소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 일원동 지도보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해풍
대표 관직 전라 병마절도사|경기 수군절도사|동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해풍(海豊). 부친은 병마절제사 김형(金瑩)이다. 동생이 김시건(金始乾)·김이건(金以乾)·김체건(金體乾)이다.

[활동 사항]

김대건(金大乾)[1583~?]은 1583년(선조 16)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까지 피신하였을 때, 김대건은 당시 좌척후장(左斥候將)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진압하였고, 그 공으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봉하여졌다. 1626년(인조 4) 경원부사로 임명되어 정묘호란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주도면밀하게 군비 태세를 갖추었다. 이후 북방 지역을 담당한 경험으로 조선과 후금(後金)[청(淸)]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1629년(인조 7) 회답사로 후금에 파견된 김대건은 조선으로 돌아올 때, 후금으로부터 안장을 갖춘 백마와 백금 50냥, 초피 10량을 선물로 받아 인조에게 바쳤다. 후금 사람들과 잘 안다는 이유로 1633년(인조 11) 2월에도 후금에 파견되었다. 1634년(인조 12) 함경도 감영에서 접응사로 근무하였다. 1638년(인조 16) 전라도병마절도사, 1639년 경기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북쪽의 분위기가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자 다시 북방으로 파견되었다. 1641년(인조 19) 통제사 유징익이 포수 5백 명을 동원하여 금주 싸움에 참여하였는데 상을 당하자, 11월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였던 김대건이 금주영병장(錦州領兵將)에 임명되어 겸직으로 출전하였다. 1646년(인조 24)부터 풍(風)에 걸린 김대건은 이듬 해에 의령부사로 임명되었다가,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묘소]

묘소는 쌍부현 세곡동에 있다고 하는데,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산리 일원동이다.

[상훈과 추모]

인종 대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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