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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289
한자 -洪氏-洪氏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0년 6월 19일 -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 박성석으로부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1년 9월 30일 -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
채록지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 장덕1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남양군수|아전 홍씨|호병대장
모티프 유형 충신담

[정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 장덕1리에서 채록된 남양 홍씨와 관련한 이야기.

[개설]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병자호란 때 호군대장에게 잡힌 남양군수 대신 죽은 아전 홍씨의 충의(忠義)을 기려 그 후손을 길 아래 홍씨로 높이 쳐주고, 다른 이속(吏屬)인 홍씨는 그와 같은 충심이 없었다 해서 길 위 홍씨로 구분하여 낮게 평가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9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라는 제목으로 464~466쪽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는 1980년 6월 19일 장덕1리에서 채록되었으며, 구연자는 박성석[남, 73세]으로 당시 남양면 조사의 주 제보자이다. 조사자로 성기열, 최명동, 김용범이 참여하였다.

[내용]

병자호란시기 남양에 쳐들어온 호병(胡兵)이 남양군수를 잡아가 항복을 받으려 하였다. 남양군수가 항복하지 않자 호군대장이 칼로 어깨를 내려쳤다. 이때 남양군수를 상전으로 모시던 홍씨가 자신의 어깨를 들이댔고, 호군대장의 칼을 맞아 팔 한쪽이 잘려나갔다. 호군대장이 남양군수의 다른 쪽 어깨를 내려치자 홍씨는 또 다른 쪽 어깨로 칼을 막았고, 나머지 팔 한쪽도 잘려나갔다. 세 번째로 군수를 또 내려치자 홍씨는 자신의 목을 내어 칼을 막았고 홍씨의 목은 잘려나갔다. 결국 목과 두 팔이 잘려 죽은 홍씨의 시신은 남양의 오리정까지 끌려왔고 후에 그 충의(忠義)을 기리는 비각이 세워졌다. 이후 자신을 희생하여 남양군수를 구한 홍씨 집안은 길 아래 홍씨라 하여 높은 인정을 받았다. 한편 다른 이속(吏屬)의 홍씨들은 길 위 홍씨라 하고 충의가 부족하다고 하여 길 아래 홍씨보다 낮은 취급을 받았다. 이에 본은 같은 남양 홍씨이지만 길 아래 홍씨[홍가]와 길 위 홍씨[홍가]를 나누어 따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길 아래 홍씨와 길 위 홍씨」의 주요 모티프는 충신열사(忠臣烈士)의 희생적 죽음이라 할 수 있다. 호군대장에게 항복을 하지 않아 죽을 위기에 처한 남양군수나 자신이 모시는 남양군수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바쳐 구하고자 한 아전 홍씨는 모두 충신열사의 모습을 띠고 있다. 국가와 왕, 수직적 계급제도에 충성해야 했던 과거 유교적 전통사회에서 충신열사는 숭고한 모범 사례로 평가되었다. 이에 ‘길 아래 홍씨’의 희생적 죽음도 당대 지역사회에서 높은 가치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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