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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고개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1309
한자 -說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4월 14일 - 「악고개 설화」 『한신대학교박물관총서』제23책-시화호의 역사와 문화 편에 수록
관련 지명 악고개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3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3리 우음도에 있는 악고개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개설]

우음도는 음섬이라고도 불렀는데,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진행된 시화호 방조제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되었다. 송산면을 바라보는 남향 쪽은 육지와 연결되었고, 안산을 바라보는 북쪽은 시화호와 접하고 있다. 우음도의 산 정상에는 지상 5층의 송산그린시티전망대가 세워져 있는데 위치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산 1-38에 해당한다. 우음도를 포함하는 넓은 간척지는 송산그린시티 사업지구로 개발 중이다. 우음도 주변은 생태공원으로, 우음도 아래 서측 지구에는 아파트 신도시, 우음도 옆 공룡알 화석지 동측 지구에는 화성국제테마파크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6년 4월 14일 한신대학교 박물관에서 발행한 『한신대학교박물관총서』제23책-시화호의 역사와 문화 편의 471쪽에 악고개 유래에 대한 내용이 설명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해당 내용에 대한 조사 정보 및 제보자 정보는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앞쪽에 서술한 조사 경위 부분의 제보자 명단을 참조하면 우음도 지역인 송산면 고정3리의 제보자는 5명으로, 지난순[1924년 출생, 여자], 최정순[1950년, 여자], 윤OO[1923년 출생, 여자], 김옥희[1957년 출생, 여자], 홍유택[1932년 출생, 남자]이다.

2012년 5월 게재한 오창현의 논문 「남양 반도의 시장체계와 생업의 변화: 화성시 송산면 어섬과 우음도 사례를 중심으로」에서는 『한신대학교박물관총서』제23책-시화호의 역사와 문화 471쪽의 내용을 참고하였다고 밝히며 본문에 악고개 유래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이전 자료에 없던 서술이 추가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해당 제보자와 조사정보가 누락되어 있으며, 서술 방식은 동일하게 조사 내용을 윤문하여 설명식으로 기술한 형태이다. 이러한 점은 오창현이 지역문화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당시 민속분야 조사단의 조사원으로 참여하였으므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현지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내용에서 빠진 부분을 추가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화성시역사자료총서』3권의 292쪽과 『화성시사』13권 353~354쪽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으며, 『문화의 뜰』90호에는 우음도당제보존회장 윤영배 인터뷰 자료가 실려 있는데, 61~62쪽 부분에 악고개 설화 관련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우음도에서 사강시장까지의 거리는 어섬과 비슷하였지만, 섬에서 육지까지 갯벌을 걸어야 하는 거리가 4㎞로, 어섬에 비해 훨씬 길었다. 게다가 우음도와 육지 사이의 갯벌에는 썰물 때에도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고 고여 있는 깊은 갯고랑이 여러 개 있었다. 그래서 우음도에는 어섬처럼 다리를 놓이지 않아 간척으로 육지가 되기 이전까지 배를 타거나 썰물에 갯벌을 걸어서 건너야 했다. 갯벌에는 깊은 갯고랑이 세 개가 있었는데 육지에 도달하려면 앞골새·직나리골·마랏개갯구랑을 차례로 건너야 했다. 넓은 갯벌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면 금방 빠져 죽을 수 있어,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빨리 걸어서 건너야 했다. 더군다나 사강시장까지 하루 만에 왕복으로 다녀오려면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시간대를 활용하여 빠듯하게 다녀와야 하는데, 물이 다 빠지고 난 간조 때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빠지기 시작할 때 바로 출발하여 바닷물을 헤치고 건너야 했다. 첫 번째 앞골새의 수심이 가슴까지 올 때쯤 건너기 시작하여 세 번째 마랏개갯구랑에서는 뛰어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한편 물이 빠져나가서 갯벌이 열려 걸어서 장에 나갈 수 있는 시간대를 ‘가미’라 하고, 이때 갯벌을 걸어 육지에 다녀오는 사람을 ‘감꾼’이라고 불렀다. 하루 두 번의 썰물에 드러나는 갯벌 길을 걸어 당일에 육지로 갔다 오는 것을 ‘도감치기’라고 불렀다. 처음 썰물에 나가 밀물 동안 일을 보고 다음 썰물에 맞춰 돌아오는 것이다. 아무리 조석간만(朝夕干滿)의 차가 크다 해도, 해산물을 팔기 위해 넓은 갯벌을 걸어서 사강시장에 다녀오는 일은 매우 힘들었고, 해상의 기상 변화에 따라 갯벌 상황이 달라져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고무로 된 장화가 나오기 전에는 짚을 비벼 부드럽게 만들어 발을 감싸고 크게 만든 짚신을 신었다. 짚신의 겉을 새끼줄로 동여매 갯벌에서 벗겨지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짚신을 허트매라고 불렀는데, 허트매를 신고 갯벌을 건너면 발이 차가워져도 동상에 걸리지는 않았다.

우음도에는 송산면 쪽 갯벌을 바라보는 고개가 있는데, 이를 ‘앞고개’ 또는 ‘악고개’라고 불렀다. 악고개의 명칭은 사강장에 나간 부모나 다른 가족이 날이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을 때 남은 가족들이 고갯마루에 올라 바다 쪽을 바라보고 서서 ‘감꾼’이 잘 들어오고 있는지 걱정스레 지켜보다 갯벌을 걸어오는 감꾼이 시야에 들어오면 “감꾼 들어와요! 감꾼 들어와요!”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잘 들리도록 악을 쓰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는 것에 유래한다.

[모티프 분석]

「악고개 설화」는 과거 우음도 주민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화에서 유래된 지명유래담이다. 「악고개 설화」에는 갯벌을 육지와의 통행로로 사용한 지역의 특수한 이동 상황이 배경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갯벌과 바다의 불안전성이 섬 주민들에게 경계와 공포를 안겨준다. 이에 썰물 시간을 계산하여 갯벌을 걸어 육지에 다녀오는 감꾼들이 안전 귀가하길 바라는 가족들의 소망과 기원이 악고개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유로 작용하게 된다. 악고개에서 악을 쓰며 고함을 치는 것은 단지 발견에 대한 흥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감꾼의 안전 귀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에 악소리를 들은 주민들은 갯벌로 쪽배를 밀고 마중을 나가서 섬으로 들어오던 감꾼이 안전히 입도(入島)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는 재난 발생 시 중앙 정부 및 관공서의 구조 지원이 늦을 수밖에 없는 도서지역의 물리적·행정적 상황과 해상조난안전시스템이 미비했던 시대적·기술적 약점을 공동체 주민간의 협동정신과 연대의식으로 극복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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