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359 |
---|---|
한자 | -公園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덕안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85년 - 너릿재 공원 조성 공사 완료 |
---|---|
현 소재지 | 너릿재 공원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
성격 | 근린공원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에 있는 근린공원.
[개설]
너릿재 공원은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와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을 연결하는 너릿재 터널 입구의 화순군 쪽 도로변에 조성된 작은 공원이다. 1971년 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너릿재는 큰 눈이 오면 한 달이 넘게 길이 끊기곤 했고, 그 이전에는 대낮에도 산적이 출몰하는 험한 고개였다 한다. 갑오 농민 전쟁 때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되고, 6·25 전쟁 때는 국군과 빨치산이 대치했던 곳이었다.
[건립 경위]
1985년 화순군 산림과의 주관으로 너릿재 소공원 기반 조성 공사와 조경 공사가 이루어졌고, 1986년 너릿재 공원 약수터 시설 공사 및 공원 화목류 등의 추가 식재 공사가 이루어졌다.
[구성]
너릿재는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 판치(板峙)로 소개되고 있으며, 동학 농민군이 무더기로 처형되었다고 해서 널재라고도 불렀다. 평소 대낮에도 산적이 나올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는데, 행실이 고약한 사람을 ‘칼 들고 너릿재나 갈 놈’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1946년 8월 15일에는 화순 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며, 6·25 전쟁 때는 국군과 빨치산이 대치를 하기도 하였다.
너릿재 공원에는 6·25 전쟁으로 인해 죽은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리는 무명용사 묘와 순국 경찰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무명용사의 묘는 1951년 4월 2일 대구광역시에서 출발하여 4월 5일 화순군 이양면에 도착하여 주둔하다가 6일 새벽 1시경 폭풍우 속에서 공비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전투 중 산화한 26명의 유해를 동년 4월 8일 안장한 곳이다. 매년 음력 2월 1일 위령제를 지낸다.
범바우산 아래에 위치한 순국 경찰 묘지는 1950년 10월 24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화순군으로 오는 도중 묘치에서 공비들의 습격을 받고 순국한 경찰관들의 유해를 안장한 곳이다. 원래 묘치에서 전사한 16위와 화순군 각지에서 전사한 경찰관 36위가 안치되었으나 대부분 연고지로 돌아가고 지금은 6·25 전쟁 때 월남한 경찰 순국자의 유해 19위만 안치되어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는 화순군과 광주광역시를 오가던 시민군들이 공수 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현황]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방향으로 너릿재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오른쪽에 아주 조그만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과거 너릿재를 힘들게 걸어서 넘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쉼터일 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공원은 아니다. 따라서 오래된 간이 화장실만 놓여 있을 뿐 벤치나 주차장 등 공원 관련 시설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