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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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節山里光山金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 절동 마을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에 있는 광산 김씨 집성촌.
[명칭 유래]
절동 마을은 예전에 마을에 절이 있었다하여 고절동, 절동이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김세보(金世寶)[1638~1696]를 입향조로 하여 이어오는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의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 1646년(인조 24) 무렵 김세보가 함평에서 동복현 절동 마을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김세보는 문숙공 김주정(金周鼎)의 후손이고 사복시 정 김희곤(金熙袞)의 아들이며 자는 여겸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함평에서 동복으로 이주하여 계부 밑에서 자랐다. 일찍부터 분발하여 가정을 세우고 일찍 가신 부친께 통한을 느끼고 다시 상복을 입고 어려서 못 다한 예를 다하였다. 늦게 만학을 시작하여 학행이 일향에 모범이 되어 항상 언행이 자상하고 태도도 정숙하였다. 이처럼 정직한 공 앞에서는 다투는 자가 없었다. 1786년(정조 10) 손자 김용언(金龍彦)[1702~1791]의 현귀함으로 인해 참의에 증직되었다.
김이홍(金履洪)은 김세보의 아들로, 1786년 아들 김용언이 귀해지자 공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김용언은 자가 덕삼(德三), 호는 송계(松溪)로, 병계 윤봉구(尹鳳九)의 문인이다. 독학역행하고 조예가 탁월하다. 평생 남의 득실을 말하지 않고 사람을 대함에 훈훈하였다. 1728년 성균관에 있을 때 상소하여 우암 송시열과 동춘 송준길의 문묘 종사(文廟從祀)를 청하였다. 행의로서 천거하여 장릉 참봉을 하였고 1787년 가선대부에 승진했다. 1806년(순조 6)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참봉 정재면(鄭在勉)이 지은 행장이 있다. 문집으로 『송계유고(松溪遺稿)』가 있다.
김문옥(金文鈺)[1901~1960]은 자가 성옥(聖玉)이고 호는 효당(曉堂)으로, 김기추(金箕錘)의 아들이다. 정기(鄭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영창(金永昌)[1910~1991]은 동복 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김재국(金在國)은 교관 김광습(金光濕)의 현손이고 김문옥의 아들이다. 경서를 깊이 연구하고 예설에 박식하며, 효우가 순수하고 착하였다. 아들 김정현(金正鉉)과 손자 김영해(金永海)가 가훈을 승습하여 학문에 힘써서 문행이 크게 알려졌다.
[자연환경]
절동 마을은 동쪽으로 가사등, 동남쪽으로 매봉, 서쪽으로 할미당, 청석강, 남쪽으로 서당골, 방축골재, 북쪽으로 토끼봉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31가구 57명이 광산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73년 효당 김문옥을 향사하는 절산사를 건립했고 2012년 4월 16일 절산사 중건 준공식을 가졌다. 1966년 건립한 입절동 광산 김씨 선조 참의공 휘 세보 유장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