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113 |
---|---|
한자 | 論介 |
이칭/별칭 | 주논개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덕진 |
[정의]
조선 후기 열녀.
[개설]
전라도 장수군 출생으로 최경회의 부실인 논개는 임진왜란에 최경회가 진주성에서 순절하자 촉석루에서 전승 잔치를 벌이던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몸을 던졌다.
[가계]
본관은 신안(新安). 진사(進士) 주달문(朱達文)의 딸이다.
[활동 사항]
논개(論介)[1574~1593]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13세에 부친을 잃고 모녀가 숙부인 주달무(朱達武)에 의탁했다. 숙부가 벼 50석에 김부호(金富豪)에게 허혼(許婚)하니 모녀는 경상도 안의현의 친가에서 피신하였다. 부호의 기소로 구금되었으나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 현감(縣監)의 명판결로 석방되었다. 현감의 관저에 의탁하게 되고 현감이 논개를 부실(副室)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최경회(崔慶會)가 경상 우병마 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로 진주에 진군하니 논개가 수행 시종하였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崔慶會)가 순절하니 논개는 수기(首妓)라 속이고 왜의 승전연에 참석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바위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내렸다.
[상훈과 추모]
1629년 진주의 선비 정대륭(鄭大隆)[1599~1661]이 ‘의암(義岩)’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남쪽에는 한몽삼(韓夢參)[1598~1662]이 쓴 것으로 전하는 ‘의암’이라는 글을 새긴 바위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암(明庵) 정식(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1722년(경종 2)에 의암 사적비(義巖事蹟碑)를 만들었다. 1740년 진주 우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왕의 명으로 비를 세우고 비각을 지었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기사(義妓祠)는 1740년 남덕하가 세운 사당으로 경상남도 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1955년 장수 군민의 성금으로 건립한 의암사(義岩祠)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1868년 진주 목사 정현석(鄭顯奭)이 마련한 추모 행사인 ‘의암 별제(義巖別祭)’는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고 현재 장수군에서는 매년 10월에 의암 주논개 축제(義巖朱論介祝祭)를, 진주시에서는 매년 5월 진주 논개제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