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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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舞踊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순선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무용.
[개설]
화순군 일대에서 전승되었던 전통 무용은 오늘날 그 전승이 끊겨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미미하나마 구술과 관련 문헌을 통해 과거의 덧배기 춤, 줄 승무, 호남 검무 등이 화순 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하였다는 것과 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계승이 끊긴 상태여서 더 이상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화순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확대된 현대 무용의 사례는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화순의 전통 무용]
화순 지역에서 행해진 춤으로는 덧배기 춤, 줄 승무, 호남 검무 등을 들 수 있다. 덧배기 춤은 조종언이 가장 잘 추었으며, 줄 승무는 조종률과 조종엽이 뛰어났고, 또한 호남 검무는 박영구가 가장 잘 추었다. 특히 오늘날 추어지고 있는 호남 검무는 이장선·이창조·신갑도의 검무를 체계화시킨 한진옥류의 검무와 이대조·이창조의 검무를 체계화시킨 이매방류 검무가 있다. 화순읍 훈리 출신인 박영구(朴永求)[1878~?]가 잘 추었다는 검무는 현재 전승되지 않아 알 수가 없으며, 이매방이 박영구에게 북 가락을 익혀 이매방 승무의 법고무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화순의 전통 무용가]
화순 지역의 전통 무용은 오늘날 전혀 계승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전통 무용의 흔적을 찾으려면 화순 지역의 대표적인 춤꾼이었던 박영구, 조종률, 조종언에 대한 생애사 검토가 필요하다.
김금옥(金錦玉)의 제자인 박영구(朴永求)[1878~?]는 얼굴이 약간 얽은 상태에 키가 작았으며 한 쪽 다리가 약간 짧았지만 춤은 매우 잘 추었다고 한다. 박영구는 승무·검무와 함께 각종 무용에 능했으며, 대금·양금·가야금에도 조예가 깊었다. 광주광역시의 금정, 남정, 광주 권번에서 후진을 양성함에 예절 교육과 철저한 법도를 세워 큰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박영구의 춤 제자로는 광주 권번에서 춤을 배운 안채봉(安彩鳳)[1920~?]이 있었다.
조종률(曺鍾律)[1846~?]과 동생 조종엽(曺鍾葉)[曺相燁, 조떼깔, 1876~?]의 본관은 창녕,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태생이며 능주 신청(神廳)의 대방(大房)을 지냈다. 즉 신청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었던 인물로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줄타기와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조종률이 조종엽과 함께 고종 황제 앞에서 한강 변에 줄을 메고 그 위에서 승무를 추었더니 고종이 감탄하여 정구품(正九品)인 의관(議官)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조종언(曺鐘言)[일명 멋덩어리, 1871~?]이 잘 추었다는 덧배기 춤은 능주천[충신강]의 영벽정(映碧亭)과 송석정(松石亭)에서 추던 춤이다. 굿거리장단과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형식이 없이 흥 풀이로 춘다. 이러한 춤의 특징은 춤사위가 크고 무릎 굴신과 어깨춤이 주가 되는 즉흥적 춤이다. 안동 권씨, 신안 주씨, 창녕 조씨가 능주에서 큰 세를 보이던 시절 한량들이 만나서 흥이 나면 누구나 즐겁게 추었다고 하여 ‘한량무’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대사나 행사를 할 때 어느 장르에 끼워 넣어, 즉 덧붙여서 춤을 추었으므로 ‘덧배기 춤’이라고도 한다. 일화에 의하면 조종언이 덧배기 춤을 추기 시작하면 남자 한량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어 ‘번뜩 번뜩’ ‘덥석 덥석’ 춤을 추었는데 점점 많은 한량들이 모여 들어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격식 없이 즉흥적으로 추는 막춤을 추었다. 그 중 조종언이 독보적으로 잘 추어 한양의 소리꾼과 춤꾼들이 일부러 와서 그의 춤을 보고 갈 정도였다고 전한다.
[의의와 평가]
화순 지역의 전통 무용으로 제시한 덧배기 춤, 줄 승무, 호남 검무 등을 살폈다. 이 가운데 능주의 한량 덧배기 춤은 야외에서 추던 춤, 남자 한량이 추던 춤, 투박하고 강한 남성의 멋을 발산 하는 춤, 즉흥적 느낌으로 추어지던 막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능주의 한량들이 모일 수 있다면 이 춤은 다시 재현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호남 검무는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이매방 승무 가운데 법고무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화순 지역의 전통 무용은 과거의 화려함과 멋스러움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나 오늘날 계승이 끊긴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화순 지역의 현대 무용 또한 온전히 발전하기란 쉽지 않으며, 화순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확대된 무용 사례 또한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