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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인구와 조직-교육기관 및 교육관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16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人口와 組織-敎育機關 및 敎育關聯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호기

[교육기관 및 교육 관련]

(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대신 당산골의 모정의 형식으로 지은 정자를 관란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관란제에서 수학한 지원 박제현, 운곡 강장원 등은 한국 화단의 거목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만조의 유배가 풀리면서 관란제의 서당 개설이 어려워지자, 뒤를 이어서 송계 김영춘이 서당을 개설했다. 서당은 이봉춘의 행랑채 등에서 개설되었는데, 그의 공적을 칭송하는 공적비가 항냇가 입구에 세워져 있다.

(2) 야학

한국전쟁 이후 마을마다 문맹퇴치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야학이 설립되었다. 진도에서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야학이 1951~1952년까지 개설되었다. 야학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부녀자와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공회당에서 열린 야학에서 한글과 샘본(산수)을 배웠다. 야학 교사는 목포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한 박병술과 이두교였다. 당시 분필 등 교육에 필요한 기자재는 의신초등학교(당시 의신국민학교)와 의신지서 등에서 얻어왔고, 램프 불에 사용할 석유는 방앗간 기름을 이용했다.

(3) 공교육

마을 어린이들은 4㎞가 넘는 거리에 있는 의신초등학교로 통학했다. 의신초등학교는 1922년 5월 2일 설립된 ‘의신개량서당’에서 출발하여 1923년 5월 15일 ‘의신공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그해 12월 1일 개교한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초등교육기관이다. 의신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1950년 4월 1일부터인데, 그해 말 ‘의신국민학교 사상분교’가 설립되었다. 그리하여 1~3학년 학생들은 진도회관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사상분교의 교사는 의신면 칠전리 출신인 박정조였다. 1961년에 ‘사천저수지’가 완공되면서 학생들의 통학권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저수지로 인해 학생들의 통학 거리가 멀어지게 됨에 따라 진도초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저수지의 완공은 진도를 진도읍의 생활권에 포함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중등교육기관으로는 의신면에 1965년 2월 20일에 개교한 의신중학교가 있었으나, 대부분 진도서중학교·진도중학교·진도여자중학교 등으로 진학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진도읍에 위치한 진도실업고등학교·진도고등학교·진도여자고등학교로 진학했다. 2002년 12월에 발간된 『사천리 사상 마을지』에 의하면, 학생 현황은 총 56명으로, 대학졸업자 13명, 대학재학생 6명, 고등학교 재학생 4명, 중학교 재학생 4명, 초등학교 재학생 19명, 유치원 재학생 5명이며, 이외 영아가 5명이다.

(표 2) 의신면 진도 학생 현황(2002년 7월 현재)

* 주: ( )은 2006년 7월 현재 상황이다.

(4) 기타

강영기는 해군 생활 중에 태권도를 익혀 1963~1965년경 밤마다 마을 청년들에게 가르쳤다. 태권도 소속은 무덕관이었으며, 마을회관에서 수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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