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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회의 철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51
한자 崔慶會-鐵印
영어의미역 Choe Gyeonghoe's Iron Seal
이칭/별칭 철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곽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원담
주요 등장인물 최경회
관련지명 진주
모티프 유형 계사년 최경회 장군의 관인을 남강에서 발견했다는 내용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관인 발견 유래담.

[채록/수집상황]

1992년 진주시에서 편찬한 『내 고장의 전통』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1747년(영조 23) 남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한 어부가 철인 하나를 건졌는데, 앞면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만력십삼년월일조(萬曆十三年月日造)’라 새겨져 있었다. 당시 병사 최진한(崔鎭漢)은 이 사실을 조정에 장계로 올리면서 이것이 1593년(선조 26)에 순국한 최경회의 직인이라고 증언하였다.

영조는 이 철인을 보고 몹시 감격해하며 동으로 인갑을 만들고 친히 관인명을 은으로 발라 진주 본영으로 보내며 잘 보관케 하였다. 이후 이 철인은 진주영의 보장물이 되었는데 영중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밤에 울었다고 한다. 1839년(헌종 5) 운주당(運籌堂)이 실화로 불탔을 때 병사가 불에 타 희생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잿더미 속에서 되찾을 수 있었고, 1899년(고종 36) 속칭 환갑(還甲)불이 났을 때도 운주당은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철인만은 중건 때 다시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의 모티브는 조선 선조 26년(1593) 계사년 전투에서 남강에 투신 자결한 최경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관인을 건져 보관하던 중 신이한 일이 일어났다는 철인의 기원담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충의공(忠毅公) 최경회와 관련한 구비 전승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조상의 얼을 되살리는 이야기이다. 매우 구체적인 기록으로 보아 신빙성이 있으며, 또한 없어진 철인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를 낳게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01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1) 앞면에는 ‘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이라 ->앞면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慶尙右道 兵馬節度使印)’이라 2) ‘萬曆 十三年 月 日造(만력 13년 월 일조)라 새겨져 있었다. ->‘만력십삼년월일조(萬曆十三年月日造)’라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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