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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47
한자 密陽 琴川里 遺蹟
영어공식명칭 Miryang Geumcheon-ri Ruin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620-2
시대 선사/석기,선사/청동기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4월~2001년 6월 - 밀양 금천리 유적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타에서 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12월 24일~2003년 5월 26일 - 밀양 금천리 유적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소재지 밀양 금천리 유적 -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620-2 지도보기
성격 유적
면적 16,530m²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일대에 조성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걸친 취락 주거지와 농경지.

[위치]

밀양 금천리 유적밀양강과 동천[혹은 단장천]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범람원에 있다. 특히 동천 유역은 북동부 산지에서 공급된 퇴적물로 매우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었는데, 밀양 금천리 유적이 있는 거문고들 역시 이러한 충적평야 가운데 하나이다. 밀양 금천리 유적이 있는 충적지에는 4~5개 정도의 자연 제방이 겹을 이루면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연 제방 배후에 발달한 습지는 과거의 하천이 습지화한 것으로 규모가 비교적 크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6년 개통한 대구부산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적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지표조사를 담당한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 주변의 지형적인 여건으로 보아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하였다. 이어서 2001년 4월부터 2001년 6월까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시굴 조사를 하였다. 시굴 조사 결과 해당 지역 일대가 자연 제방과 배후 습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민무늬토기 시기 초기의 주거지와 농경 유구가 분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2001년 12월 24일부터 2003년 5월 26일까지 18개월에 걸쳐 발굴 조사를 하였다. 발굴 조사 면적은 1만 6530m²이다.

[형태]

밀양 금천리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2동, 야외 노지(野外爐址) 2기, 적석 유구(積石遺構) 2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9동, 굴립주 건물지(掘立柱 建物址) 9동, 수혈 4기, 함정 1기, 집석 유구 6기, 논과 밭, 저습지 등이 확인되었다.

1. 신석기시대

1) 2기의 신석기시대 주거지 중 하나는 방형으로 길이와 폭은 각 8m이다. 중앙 부분에 노지가 있고, 노지는 납작한 천석을 비스듬히 세워서 원형으로 돌렸는데, 직경은 80㎝ 정도이다. 주거지의 깊이는 10㎝ 이내이다. 또 하나의 주거지는 원형이며 천석을 비스듬히 세워서 돌리고, 노지의 외곽을 점토로 보강하여 청동기시대 초기 주거지와 중복 관계를 이루었다.

2) 야외 노지 수혈

야외 노지는 직경 1.8m 가량의 원형 수혈 내에 불에 달구어진 돌과 숯, 재, 토기 조각 등이 가득 채워져 있다. 내부의 돌은 천석이 대부분으로 모두 깨져 있다.

3) 적석 유구

유구는 50㎝ 내외의 큰 천석을 4~5겹으로 쌓았으며, 직경은 각각 5m 정도이나 북쪽의 것이 조금 크다. 돌 중에는 불에 달구어진 돌이 관찰된다. 적석을 모두 제거한 후 북쪽 적석 밑 중앙부에 소토가 집중되어 있고, 주변에 수탄이 확인된다.

2. 청동기시대

1) 주거지

민무늬토기시대 초기의 주거지는 모두 9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 있다. 장방형의 경우 길이 10m 혹은 5m 내외가 일반적이나 그 중 하나는 13.8m이다. 주거지 내에는 납작한 천석을 수직으로 세운 방형의 위석식 노지 1기씩이 있다. 노지는 방형 주거지에서는 중앙에, 장방형 주거지의 경우는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노지의 바닥에는 돌을 깔지 않고 점토로 다졌다. 주거지 내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많지 않고 석기는 돌도끼나 석탁, 돌칼, 돌살촉 정도로 빈약하다. 그 외에 송국리형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깊이는 10㎝ 이내로 매우 얕은 편이다.

2) 굴립주 건물지

대부분은 모두 자연 제방 위에서 동서 방향의 열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평면상 사다리와 같은 출입 시설을 설치한 흔적은 없고, 대벽 건물, 지상식 건물이 발견되었다. 대벽 건물은 크고 작은 구덩이를 여러 겹 줄지어 파서 석체를 세운 지상식 건물이다. 벽체가 두터운 부분에는 2~3열의 주혈이 있고 벽체의 넓은 부분은 폭이 80㎝이다. 내부의 중앙 좌우에는 서로 마주 보는 2개의 주혈이 있는데, 지붕을 받치기 위한 기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전체 크기는 길이 8m, 폭 5m의 장방형이다. 건물의 용도는 분명하지 않으나 같은 시기의 주거나 창고와는 다른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지상식 건물인 유구는 작은 기둥을 세워 일렬로 세워서 벽으로 이용한 세장방형의 건물이다. 중앙을 따라서도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기본적으로 대벽 건물과 유사하나 벽체를 이루는 주혈이 일렬이며, 크기도 작다. 길이 16m, 폭 4m로 매우 좁고 긴 건물이다.

3) 수전과 수로

자연 제방의 북쪽 고소에서 배후 습지로 이어지는 완만한 사면에 수전(水田)이 조성되어 있다. 수전은 청동기시대층에 발견되는데, 이질토의 혼입이나 토색, 논둑의 존재 등 여러 점에서 수전으로 판단된다. 수전 하층 습지의 남쪽 외곽은 주거 지역과 구분하는 대형 둑이 조성되어 있다. 수전이 조성된 면적은 서쪽으로 갈수록 점차 넓어진다. 이 범위 내에서 모두 70면 이상의 수전이 조사되었는데, 단위 면적은 5~6평 정도이다. 수전의 폭은 15~20㎝ 가량의 둑으로 구획되어 있고, 논둑은 전면을 평면으로 조금씩 제토하는 과정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였다. 수전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 주류이나, 형태가 다소 일그러지거나 논둑이 직선이 아닌 굴곡을 이루는 것은 미세한 지형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

신석기시대 유물은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겹아가리토기, 돌도끼, 돌창, 보습, 갈돌, 지석, 부리형 석기, 발화석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사격자문, 능형집선문 등의 침선문계와 단사선문, 점열문, 사선문, 지두문 등의 압날·자돌문 및 압인계의 문양으로 구분된다. 청동기시대는 토기류는 호형토기, 발형토기, 소형 토기, 붉은간토기, 덧띠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 돌창, 돌도끼, 돌칼, 부리형 석기, 보습, 공이, 따비, 갈판, 지석 등으로 다양하다. 이 외에 방추차, 어망추, 토주, 원판형 토제품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현황]

밀양 금천리 유적 대부분은 부산대구고속도로에 편입되어 있고, 일부는 부산대구고속도로 주변의 농경지에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금천리 유적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생활하였던 충적지와 주변 지형의 이용 방향, 한반도 남부 지역의 농경의 이해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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