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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91
한자 申機均
영어공식명칭 Shin Gi-gy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경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신기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신기균 파리장서사건 연루되어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3년 2월 26일 - 신기균 밀양물산장려회 발기 총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23년 3월 11일 - 신기균 밀양물산장려회 총재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24년 음력 8월 말 - 신기균 군정서 국내 운동원으로 참여 및 군자금 제공
활동 시기/일시 1926년 1월 - 신기균 경북경찰부 고등계 형사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6년 3월 23일 - 신기균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 석방
활동 시기/일시 1930년 9월 - 신기균 권총 반입으로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41년 9월 12일연표보기 - 신기균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신기균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예림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예림중앙1안길 25-12[예림리 1072]지도보기
활동지 예림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후사포리 179]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밀양물산장려회 총재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신기균(申機均)[1860~1941]은 1860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예림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유가(儒家)의 법도에 맞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였다. 밀양 예림서원 철폐 이후 설립한 ‘예림재’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신기균은 1919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연루되어 대구경찰부에 체포, 고초를 당하였다.

신기균은 1923년 2월 26일 박상일 외 50여 명의 유지들과 밀양물산장려회(密陽物產獎勵運動) 발기 총회를 개최하고 사회 제반 사항을 논의하면서 금주, 단연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1923년 3월 11일 60여 명의 참여하에 육영재에서 개최한 밀양물산장려회 창립 총회에서 신기균은 총재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밀양 지역의 교육 진흥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창립된 밀양교육회에서 신기균은 밀양 지역 원로 박상일, 노상직, 이병희 등과 함께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신기균은 1924년 음력 8월 말 군정서(軍政署) 국내 운동원이 되어 30원의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1926년 1월 신석원, 송채원과 함께 경북경찰부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어 대정8년제령제10호위반 출판법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 신기균은 1930년 9월 권총 반입 문제로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신기균은 1941년 9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신기균은 2008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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