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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2009
한자 止足堂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사촌길 3-25[미촌리 산25-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지족당 건립
현 소재지 지족당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사촌길 3-25[미촌리 산25-1]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목조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의령남씨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있는 의령남씨 입향조를 기리기 위한 재실.

[개설]

남오(南祦)는 밀양에 사는 의령남씨의 입향조이다. 남오는 충렬왕 때 추밀원직부사를 지낸 남군보의 6세손이자 참지문하부사 남을진의 증손으로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부인은 광산김씨이다. 남오의 장남 침류정 남우문(南右文)과 4남 조암 남필문(南弼文)도 김종직의 문인이었다.

남오는 1454년(경태 5) 별시에 등과하여 성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는데, 연산군의 혼란한 정국을 보고 경기도 양주(楊州) 임간(臨澗)에서 단장면 미촌리 사촌(沙村)으로 이거하여 은둔하였다. 남오는 사촌에 은거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연이은 화를 피하였다. 중종반정 후 여러 번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사촌의 산수에서 소요하며 자호를 지족당(止足堂)이라 하였다. 밀양 부북 대항 출신의 남곤(南袞)[1471~1527]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기묘사화 때에도 사촌이었던 남오는 신중한 처신으로 화를 면하였다.

‘지족당(止足堂)’ 당호는 남오의 후손 남상규가 문중의 중의를 모아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68년 마을 뒷산인 계령산 기슭에 집을 지으면서 남오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위치]

지족당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산25-1번지에 있다. 미촌리 사촌 마을회관을 지나 500m 정도 되는 동쪽의 산언덕에 재실이 있다.

[변천]

남오의 후손들은 단장면 안법리 법귀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며 선조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지족당을 지었다. 지족당 기문은 백저(白渚) 배동환(裵東煥)[1899~1984]이 1975년 가을에 지었고, 편액은 방손 남호목(南浩穆)의 글씨이다. 남오의 묘는 단장면 사연리 침류정 뒷산에 아들 남우문의 묘와 함께 있고, 미촌리 구미마을 산비탈에는 「남판서 술새미」 설화가 전하여 오는 ‘주천(酒泉)’의 흔적이 있다.

[형태]

지족당은 목재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 ‘지족당(止足堂)’과 곁채 ‘염수재(念修齋)’ 두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출입문 이름은 ‘광복문(光復門)’이다.

[현황]

지족당은 후손들이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고 평소 정문이 잠겨 있어 출입하려면 문중 유사에게 연락하여야 한다.

[의의와 평가]

지족당을 통하여 의령남씨가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에 입촌한 배경, 연산군부터 중종 시대 밀양 사족 계층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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