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04
한자 茶竹里
영어공식명칭 Daju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외면 다죽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외면 다죽리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329가구
인구[남/여] 565명[남 285명|여 280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다죽리산외면의 남쪽에 있으며 면 소재지이다. 동쪽으로 금곡리, 서쪽으로 금천리남기리, 북쪽으로 엄광리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 단장면 미촌리 사이에 단장천이 흐른다. 다원, 율전, 죽남의 세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다죽리’ 지명은 자연 마을인 다원과 죽동·죽서의 합성에서 비롯되었다. ‘다원’ 지명은 차나무가 많이 재배된 데서 비롯되었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죽동리’와 ‘죽원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는 ‘죽서리’, ‘죽원리’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는 ‘죽동리’, ‘죽서리’가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동리와 죽서리, 금천리 일부를 합쳐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외면 다죽리로 개설되었다. 1918년 천화산외면산외면으로 개칭되어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의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가 되었다.

다죽리의 취락은 꾀꼬리봉 남쪽 산록의 계류천 유역에 형성되어 있다. 단장천 유역의 충적지 말단부의 제방 일대에도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가장 일찍 생겨난 다원마을에는 지석묘군과 고분군이 남아 있으며 면 사무소를 중심으로 죽동마을과 죽서마을로 나뉜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모씨(毛氏)와 당씨(唐氏)가 입촌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일직손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율전마을은 조선 초에 밀성손씨가 입촌하여 세거지를 이룬 곳이다. 죽남은 동쪽의 단장천에 연해 있는 마을로 일제강점기 농지가 간척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자연환경]

다죽리 북쪽의 꾀꼬리봉[538.1m]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동쪽의 평전산[216.0m]과 서쪽의 화지산[177.3m]으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곡저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다원동산[203.2m] 일대에서 발원한 계류천인 다죽천 유역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괴촌을 이룬다. 남쪽에는 단장천이 흘러 하안에 다원들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329가구, 565명[남자 285명, 여자 2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다죽리의 농업은 마을 앞의 단장천 유역에 형성된 충적지에서 벼농사와 시설농업이 이루어진다. 국도 제24호선이 중앙을 지나고 있어 외부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북쪽으로는 함양울산고속도로가 지난다. 다죽리에는 산외면 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한 행정기관이 들어서 있다.

취락 형성 역사가 오래되어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선사시대 고인돌군과 고분군이 있으며 조선시대 세워진 밀양 혜산서원밀양 죽원재사를 비롯하여 손씨 고가가 남아 있다. 이 중 밀양 혜산서원[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은 1753년에 서산서원(西山書院)으로 창건하였으며, 손조서(孫肇瑞)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혜산서원 앞에는 수령 600년 된 차나무가 있다. 밀양 죽원재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손기양[1559~1617]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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