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82
한자 小台里
영어공식명칭 Sota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소태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소태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124가구
인구[남/여] 202명[남 96명|여 106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소태리(小台里)밀양시 청도면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요고리고법리, 서쪽과 남쪽에는 두곡리가 있다. 북쪽은 청도군과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소태리는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본동인 소태에서 따와 붙여진 지명이다. 소태는 마을의 동남쪽에 멀리 삼태봉(三台峰)[초동면 오방동무안면 동산리의 뒷산 봉우리와 무안면 부로리의 앞산 봉우리]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소태리는 본래 경북 청도군 외서면에 속하였는데, 1912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소태와 대곡, 금서, 솥마지 등을 병합하여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소태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그대로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소태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소태리가 되었다.

소태리의 본동인 소태는 임진왜란 전에 참봉(參奉) 김기련(金基璉)이 경북 청도군 토평동에서 이거한 후 김해김씨 세거지가 된 것으로 전한다. 솥마지는 임진왜란 때 경주최씨가 피난을 와 정착한 이후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자연환경]

소태리는 북쪽과 동쪽, 서쪽 모두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산간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소태리의 북쪽은 배바위산[608.1m]과 천왕산[619.3m]에서 이어지는 높은 산지가 있고, 동쪽으로는 배바위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두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호암산[611.2m]에서 죽바위산[421.5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요고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천은 북서쪽과 북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남서쪽 경계부에서 두곡천과 합류한다. 소하천변을 따라 두곡리의 중앙에 좁고 긴 곡저 평야가 형성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124세대, 202명[남자 96명, 여자 1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소태리의 하천변을 따라 발달한 평지는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벼농사와 풋고추가 주소득원이다. 도로는 국도 제24호선이 소태리의 남서쪽 경계부를 따라 통과하며 창녕군으로 이어진다.

자연 마을로는 배바위산 남동쪽 사면의 소태지 아래 소태마을, 중산간의 솥마저수지와 소태저수지 사이의 솥마지마을, 소태리의 남쪽에 자리한 유촌으로도 불리는 대곡마을이 있다. 소태에는 김호원(金浩源)의 사의정(四宜亭)과 김치성(金致聲)의 춘우당(春雨堂), 김해김씨모선재(慕先齋), 김태린(金泰麟)의 서당인 구지당(求志堂)과 김재화(金在華)의 태산서당(台山書堂)이 보존되어 있고, 유촌 부근에 보물로 지정된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이 있다.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이 있는 곳은 천주사지(天柱寺址) 또는 천축사지(天竺寺址), 죽암사지(竹岩寺址)였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고 석탑이 있어 탑골로 불린다. 고려 때 조성된 석탑에서 나온 ‘고려당탑조성기(高麗堂塔造成記)’에서 절의 창건 연대를 신라 때로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나왔으며, 탑의 조성은 1109년(예종 4)으로 추정한다. 또한 소태리 내에는 청도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소태저수지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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