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337
한자 堤大里
영어공식명칭 Jeda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제대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제대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160가구
인구[남/여] 269명[남 158명|여 135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제대리(堤大里)밀양시 부북면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오례리감천리, 동쪽으로 삼문동, 남쪽으로 후사포리전사포리, 서쪽으로 무안면 마흘리와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제대리의 명칭은 자연 마을 중 하나인 제대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옛날 진사 장건 등이 지역민을 위하여 흥망제(興防堤)라는 제방을 축조한 이후부터 못골로 불리었다가, 이후 ‘제대(堤大)’가 된 것으로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대구부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으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제대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가 되었다.

제대리는 자연 마을로 제대(堤大), 한골[대동(大洞)], 송악(松岳) 등이 있다. 제대리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고려 때 밀양박씨가 정착한 이후라고 전해진다. 대동은 한골로도 불리는데, 제대리에서 처음 형성된 마을이라 전한다. 제대는 지동(池洞), 또는 제동(堤洞)이라고도 하며 임진왜란 이전 장씨가 많이 살았으나 난을 겪으며 폐동하였다가 임진왜란 이후 최씨 일가가 정착하며 다시 마을을 형성하였다. 송악은 본래 후사포리에 속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대리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남서쪽에는 우령산[596.5m]에서 이어진 산지가 자리하고, 남동쪽 끝으로는 밀양강과 접하고 있다. 또한 남쪽과 북쪽도 서쪽 산지에서 뻗은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동쪽으로 트여 있는 분지형의 지형이다. 하천은 서쪽 산지의 정각사가 자리한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다가 밀양강에 합류한다. 소하천의 발원지 부근에는 대동못이 있고, 서쪽 산지와 동쪽 평지의 접경인 중간 지점에는 대규모의 제대리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소하천 상류부의 골짜기를 따라 소규모 취락이 발달하여 있으며, 중류부에서는 곳곳에 좁은 들이 펼쳐져 있고, 북쪽 산기슭 쪽으로 취락이 발달하여 있다. 하류부의 밀양강 합류점 부근으로는 못밑들, 수리안들 등이 펼쳐져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160세대, 269명[남자 158명, 여자 1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제대리는 서쪽 제대천과 밀양강의 합류부 주변 농경지에서 시설 작물 재배가 이루어지는 농촌 마을이다. 또한 중담의 남쪽 산기슭에 제대농공단지가 있다.

도로는 제대리 동쪽 경계부에 국도 제58호선이 북쪽 밀양강 변으로 이어져 있어 외부와 교통이 편리하며, 점필재로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한골에는 신도비와 추원재[김종직 생가]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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