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손유호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56
한자 密陽 孫攸好 墓
이칭/별칭 선락장군 손유호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272-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372년연표보기 - 손유호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48년연표보기 - 손유호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선락장군 손유호 묘 경상남도 기념물 제237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450년 - 밀양 손유호 묘 묘비 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선락장군 손유호 묘에서 밀양 손유호 묘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밀양 손유호 묘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밀양 손유호 묘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272-1 지도보기
성격 분묘
관련 인물 손유호
크기(높이,지름) 682㎡[면적]
소유자 밀양손씨 종친회
관리자 밀양손씨 종친회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37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에 있는 밀양 출신 조선 전기 무신 손유호의 무덤.

[개설]

밀양 손유호 묘(密陽 孫攸好 墓)는 조선 전기의 인물인 손유호(孫攸好)[1372~1448]의 묘이다. 손유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372년 출생하였으며, 1410년 종4품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두모포(豆毛浦)의 관군의 지휘를 맡았고, 1419년에는 대마도 정벌에 참가하였다. 이후 아버지의 병환을 돌보기 위하여 경상남도 밀양으로 낙향하였으며, 나이 77세인 1448년에 사망하였다.

2001년 12월 20일 선락장군 손유호 묘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23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밀양 손유호 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밀양 손유호 묘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272-1, 밀양손씨 선산에 있다.

[형태]

밀양 손유호 묘의 면적은 682㎡이다. 밀양 손유호 묘는 원형의 무덤과 상석(床石) 1기, 문인석 2기, 묘비 1기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묘역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묘와 상석, 중단의 동서에는 문인석, 그리고 하단의 동쪽에는 묘비가 배치되어 있다.

묘는 전형적인 조선 전기의 장방형(長方形)의 둘레돌, 즉 호석(護石)을 두룬 분묘(墳墓)이다. 둘레돌은 화강석을 다듬어 장대석(長大石)을 쌓고 위에 갑석(甲石)을 덮었다. 묘의 앞쪽에는 상석이 놓여 있는데 고석(鼓石)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조각되어 있으며, 고석의 앞쪽 좌우에 귀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문인석은 좌우로 마주보고 있는 2기가 동일한 형태이며, 일부 마멸되었다. 머리에는 관(冠)을 썼고, 손에는 홀(笏)을 들었으며,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묘비는 전면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손유호의 세계(世系)와 생몰년·행적·자손·글쓴이의 추모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묘비는 1450년에 세워졌으며, 성균관 사예를 지낸 박욱(朴彧)이 썼다.

[현황]

밀양 손유호 묘는 밀양손씨 종친회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밀양 손유호 묘는 조선 전기 묘제로 완형에 가깝게 남아 있고, 특이한 점이 있어 조선 전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경남관광 길잡이(https://tour.gyeongnam.go.kr)
  • 밀양문화원(http://miryang.kccf.or.kr)
  • 밀양시청(https://www.mir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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