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484
한자 朴守
영어공식명칭 Park Soo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병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박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9년 - 박수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19년연표보기 - 박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05년 4월 16일 - 박수 선무원종공신2등에 녹훈 및 진용교위로 승진
출생지 동산리 -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박수 묘소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남성
본관 밀양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무신.

[가계]

박수(朴守)[1557~1619]의 본관은 밀양이다. 1557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동산리에서 태어났다. 정국군(靖國君) 박위(朴葳)의 후손이며, 병사(兵使) 박임번(朴林蕃)의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순인(朴舜仁)이고, 아버지는 박붕(朴鵬)이다. 부인은 문화류씨 현감(縣監) 류진형(柳震亨)의 딸이고, 아들은 박동영(朴東英)이며, 사위는 이만영(李萬英)이다.

[활동 사항]

박수는 어려서부터 호기와 용력이 남달라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혔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올라 수문장(守門將)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고을 사람 유정(柳汀), 유백춘(柳伯春), 박인국(朴仁國) 등과 창의하여 부사 박진(朴晉)의 지휘 아래 작원관(鵲院關)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밀려 의병들과 함께 울산, 경주 방면으로 옮겼다. 박수는 전투 계획을 잘 세워서 울산과 경주 방면의 왜적을 많이 격파하였으며, 동천(東川)에 이르러 이여량(李汝良) 군과 합진하고, 적선이 태화강(太和江)으로 진입하자 밤을 틈타 화공(火攻)으로 왜적을 격파하였다.

박수는 경주부윤 박의장(朴毅長)이 불러 전쟁의 책략을 묻자 둔전책으로 답하고, 1592년 9월 다시 밀양으로 돌아와 삼랑포(三浪浦) 싸움에서 7번을 싸워 모두 이겼다. 1596년(선조 29)에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막하에서 활동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병사 김응서(金應瑞)가 진을 치고 있는 달성으로 달려가 많은 전공을 세웠다.

[묘소]

박수의 묘소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 동쪽 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수는 1605년(선조 38) 4월 16일 선무원종공신이등(宣武原從功臣二等)에 녹훈되고,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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