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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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珍李氏 麗隱公派 宗中 古文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9-18[내진리 17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강진 |
작성 시기/일시 | 1657년 -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 중 분재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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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시기/일시 | 17세기 -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 간찰 작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10월 29일 -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소장처 | 용안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1길 39-18[내진리 173]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이사지|이식|이덕창|이계윤|이이장 |
용도 | 분재기|간찰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7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용안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개설]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碧珍李氏麗隱公派宗中古文書)는 여은공파 시조 이사지(李思之)의 후손이 작성한 것으로 이계윤(李繼胤)[1583~1659] 분재기(分財記), 동암 이이장(李而樟)[1609~1653]의 간찰, 종회 통문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여은공파 파조 이사지는 공양왕 때 중랑장 벼슬을 지내고 왜구 침입을 격퇴한 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는데, 벽진이씨 시조 이총언(李忩言)의 14세손이다. 증손자 성산군(星山君) 이식(李軾)이 중종반정 후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시거하였고, 이식의 양자 이덕창(李德昌)[1503~1575]이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로 이거함으로써 벽진이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구성/내용]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 중 이덕창의 증손자 이계윤의 분재기는 1657년에 작성된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분재기 중 대체로 후기의 것으로,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이계윤의 분재기는 자녀 균분 상속제와 자녀 윤회 봉사 등의 특징을 담고 있는 마지막 시기 자료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딸이 상속 받은 재산은 시가(媤家)에서도 자기 몫으로 보존되며, 후손이 없으면 딸 몫의 전답과 노비가 친정으로 반환되는 등의 독특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이장의 간찰은 17세기 사대부의 일상사를 전달하는 기록일 뿐만 아니라, ‘신생(辛生)의 옥(獄)’과 같은 당시의 역사 사건에 관하여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계윤의 장남 이이장은 네 명의 동생 이이주, 이이정, 이이상, 이이두와 더불어 모두 조경암 장문익(蔣文益)의 제자가 되었는데, 지역 사회에서는 이들을 ‘이씨(李氏) 오학(五鶴)’으로 불렀다.
종회 통문은 경상남도 밀양 입향조 성산군 이식의 계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자료이다.
2015년 10월 2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7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벽진이씨 여은공파 종중 고문서는 조선 후기 경상남도 밀양 향촌 사회의 동향과 사족(士族)의 의식 및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