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565
한자 李光軫
영어공식명칭 Lee Gwang Jin
이칭/별칭 여임(汝任),금시당(今是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13년연표보기 - 이광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46년 - 이광진 증광문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이광진 사망
출생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거주|이주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여흥
대표 관직 병조정랑|사헌부지평|좌부승지

[정의]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문신.

[가계]

이광진(李光軫)[1513~1566]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여임(汝任), 호는 금시당(今是堂)이다. 이행(李行)의 후예로, 아버지는 진사 이원(李遠)이다. 어머니는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 홍윤덕(洪潤德)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광진은 1546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예문관검열(禮文館檢閱), 봉교(奉敎),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 등 청요직(淸要職)을 지냈다. 이후 외직으로 순천, 사천, 창녕 현감 등을 지냈는데, 사천현감 재임 시에 효자를 선발하고, 흉년에 백성을 구휼한 공적으로 임금의 포상을 받았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령(掌令),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하고, 승정원승지로 승진하였다.

각 지방의 사풍 진작과 흥학을 위하여 43인의 사유(師儒)를 선발할 때에 이광진이 수반(首班)으로 선발되었다. 다시 담양도호부사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벼슬을 버리고 밀양으로 귀향하였다. 고향의 언덕에 금시당(今是堂)을 짓고 자신의 학문의 세계를 이끌어 준 월연 이태쌍경당을 오가며 지조와 학문이 높은 선비들과 교류하였고, 후에 아들 이경홍이 후진을 양성하는 강학소로 사용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광진의 저서로는 『금시당유고(今是堂遺稿)』, 『금시당집(今是堂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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