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61
한자 民族敎育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7년 11월 1일 - 사립 개창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9월 - 사립 동화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1년 3월 25일 - 사립 정진학교 설립

[정의]

개항기·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근대 학교 설립과 근대 교육 증진으로 국권 회복을 도모한 민족 운동.

[밀양에서의 민족교육운동]

개항기·일제강점기의 자강 운동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실현을 위한 식산흥업과 함께 또 다른 축인 ‘근대 교육 증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근대 학교의 건학 이념은 애국심 고양, 인재 양성, 민지 개발, 문명 발달, 국권 회복 등이었다.

밀양 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유생 손정현이 향청에 속한 재산을 재원으로 하여 관아 부속 건물인 호장청에 1897년 11월 1일 설립한 사립 개창학교(開昌學校)였다. 1908년 9월 설립된 사립 동화학교(同化學校)는 신지식으로 청년을 교육하고 자주독립의 애국 사상과 항일 사상을 고취하여 항일 투사를 육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건되었다. 사립 동화학교는 1910년 일제 강점 후 강제 폐교되었으나 1910년대 비밀 결사 운동과 1920년대 의열단 투쟁 및 민족 운동을 주도한 많은 인물을 배출한 밀양 지역 근대 민족 교육의 산실이었다.

일제 강점 직후인 1910년 11월 기준 밀양 지역의 근대 학교는 개창학교의 후신인 공립밀양보통학교[현 밀양초등학교], 사립 명원여학교(明源女學校), 화산의숙(華山義塾), 진성학교(進成學校), 양진학교(養進學校), 서창학교(西昌學校), 영신학교(永新學校), 경성학교(儆成學校), 동화농업학교(同化農業學校), 진명학교(進明學校), 영흥학교(永興學校), 고명학교(高明學校), 정명학교(正明學校), 기창학교(岐昌學校) 등이 있었다.

일제는 1911년에 「사립 학교 규칙」을 제정하여 사학의 설립 운영, 교육 목적과 방침, 명칭, 교과서, 교원 등 교육 전반에 걸쳐서 통제를 하였다. 이후 기존의 사립 근대 학교들은 일제의 교육 정책에 따라 거의 강제로 폐교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적 실력 양성론의 전개와 전 민족적 교육열의 고조로 밀양 각지에서 개인 독지가나 사회운동단체, 그리고 마을, 문중에 의한 사립 학교, 야학, 강습소 등이 잇따라 설립되었으나 일제의 탄압과 자금난으로 폐교되거나 공립 보통학교에 흡수되어 갔다.

1929년 1월 기준 밀양 지역에 설립되어 있던 민족 교육 기관은 임천야학회, 백산야학, 백산야학원, 송산야학원, 사립 표충학원, 사립 정진학교, 밀양노동야학원, 수산노동야학회, 금산야학회, 남명강습소, 사연야학회, 국전야학강습소, 신법노동야학, 중산리야학회 등 14개소였다. 전체 학생 수는 830여 명이었고, 30여 명의 교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일제강점기 밀양 지역을 대표하는 사립 근대 학교는 1921년 3월 21일 부북면 퇴로리에 설립된 정진학교이다. 정진학교는 교육 목적을 국민 윤리 앙양, 애국정신 및 신지식 함양에 두었다. 교과목은 수신과로 소학과 사서(四書), 애족 애국심 고취를 위한 국어, 국사, 지리, 음악, 그리고 신학문으로 산수, 이과, 교련 등을 가르쳤다.

1921년 9월 민족 문화 창달과 항일 교육이 문제가 되어 정진학교 교장과 전 직원이 일제 경찰에 구검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32년에는 동문회인 정우회(正友會)가 야학과 강습회 등을 통한 향토 건설 운동을 전개하다가 「정우회보」 발간이 문제가 되어 졸업생과 교사 등 8명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정진학교와 같이 민족 교육을 담당한 밀양 지역 사립 근대 학교들은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과 황국 신민화 정책이 정점으로 치닫던 1930년대 후반 이후 대부분 강제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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