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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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小宗 |
영어공식명칭 | Park So-j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구진성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월 6일 - 박소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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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박소종 밀양 3·13 만세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4일 - 박소종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73년 3월 26일 - 박소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박소종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765 |
학교|수학지 | 동화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72[내일동 494-1]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박소종(朴小宗)[1897~1973]의 아버지는 박상진(朴祥珍)이다. 박소종은 1897년 1월 6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박소종은 동화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다가 3·13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윤세주와 윤치형은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의 만세 운동 현장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밀양으로 왔다. 윤세주와 윤치형은 동화학교 교장 전홍표를 찾아가 밀양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고, 박소종도 여기에 동참하여 시위 당일 밀양 장터에 모인 군중 속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1919년 3월 13일 오후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내걸고 윤세주가 높은 곳에 올라서서 「독립선언서」를 읽어 나갔고, 그 사이에 박소종을 비롯한 동지들은 미리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에 배부하였다. 「독립선언서」 낭독을 마친 뒤 수천 명의 군중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 만세”를 외치자, 밀양 주재 헌병과 경찰들이 총칼을 휘두르며 진압하고자 하였고, 부산 일본 헌병수비대 병력이 더해져서야 가까스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박소종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9월 21일 부산형무소에서 출소하였다. 박소종은 1973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박소종에게는 200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